박형준 도쿄 특파원
인터뷰를 한 뒤 일본 외무성 당국자와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이 당국자는 “외상의 톤이 강하다고 느꼈다니 의외다. 일본 정부 인사들은 ‘이 정도는 평범하다’고 생각한다. 일본 정부의 생각이 어떤지 한국에 전달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래서 또 놀랐다.
그리고 닷새 만인 이달 1일 일본 정부는 수출 규제 강화 조치를 발표했다. 전격적이었다. 이런 움직임은 치밀하게 계산된 결과였다. 지난해 10월 30일 한국 대법원이 강제징용 배상 판결을 내린 뒤부터 일본 정부는 강경한 태도를 지속했다. 일본은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이란 국제법을 위반한 한국과 더 이상 어떤 것도 할 수 없다’는 인식이 팽배했다. 각 부처는 보복 조치 검토에 들어갔다.
올해 2분기(4∼6월) 무렵이었다. 외무성 당국자들을 만나면 “한국이 징용 해결책을 빨리 제시했으면 좋겠다. (보복 조치 발표를) 겨우겨우 막고 있다”고 말했다. 그들은 대형 ‘쓰나미’가 오고 있다고 보는 듯했다. 고노 외상 인터뷰는 쓰나미 직전의 마지막 ‘힌트’였는지도 모른다.
경제산업성 당국자는 1일 “한국 측이 징용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는 것도 이번 조치 발표에 영향을 미쳤다”고 공개적으로 말했다. 징용 문제에 대한 본격적인 보복이 시작됐음을 알린 셈이다. 이에 어떻게든 외교로 풀어보려던 외무성 당국자들은 적지 않게 당황한 모습이었다.
일본의 조치 이후 한국 경제계는 긴장감을 늦추지 못하고 있다. 만약 그런 모습에 총리관저가 ‘의도한 대로 가고 있다’고 여긴다면 이건 ‘자충수’가 될 것이다. 과거 일본은 똘똘 뭉친 하나였지만 보복 조치 발표 후 지식인층이 “그래도 이건 아니다”라는 목소리를 지속적으로 내고 있다.
문제의 근원이자 해결 열쇠이기도 한 징용 문제로 돌아와 보자. 한국 정부는 지난달 19일 처음으로 징용 해결책을 제시했다. 당시 외무성 내에는 ‘한국의 제안을 두고 밀고 당기기를 해보자’는 목소리도 있었지만 너무도 강경한 총리관저의 1강 독주에 눌려 아무런 목소리도 내지 못했다. 하지만 아베 정권이 ‘한국 압박’ 일변도로 고집한다면 한일 갈등을 해결할 수 없다. 한국 국민 정서상 정부가 일본의 압박에 굴복할 수도 없다. 어느 한쪽의 제안이 마음에 안 들 수는 있겠지만, 그걸 협의하고 조정하는 것이 바로 외교 아니겠는가. 강대강 대치를 접고 ‘외교’를 전면에 앞세울 때가 꽉 막힌 것처럼 보이는 바로 지금이어야 할 것 같다.
박형준 도쿄 특파원 love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