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프랑스 대혁명 기념일 행사장에서 경찰과 대치를 벌이는 노란조끼 시위대. 파리=AP 뉴시스
김윤종 파리 특파원
14일(현지 시간) 오전 10시 파리 샹젤리제. 1789년 프랑스 대혁명을 기리는 ‘대혁명기념일’ 행사인 군 퍼레이드를 보려고 거리에 나선 매튜 씨(34)는 한숨을 쉬었다. 많은 인파가 몰렸지만 곳곳에 세워진 바리케이드로 인해 샹젤리제 중심도로에는 진입하지 못했다.
행사를 가까이 볼 수 있는 샹젤리제 안쪽 지역으로 이동하려면 바리케이드 앞에서 200m가 넘는 줄을 선 뒤 가방 검사 등 검문을 거쳐야 했다.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는 생각이 드는 순간, 바리케이드 앞에서 경찰과 실랑이를 벌이는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오전 10시 40분 전투기 에어쇼가 펼쳐지자 시민들의 환호성이 터졌다. 그러나 노란조끼 시위대는 ‘우∼’ 하고 야유를 퍼부었다. 군 퍼레이드가 끝난 후에는 아예 바리케이드를 무너뜨리면서 경찰과 치고받았다. 곳곳에 최루탄이 터지면서 샹젤리제 거리는 아수라장이 됐다.
이 과정에서 눈에 띈 것은 노란조끼 시위를 바라보는 프랑스 시민의 ‘시선’이었다. 대체로 무관심했고, 폭력사태가 발생하려 하자 슬며시 자리를 피했다. 프랑스 내무부에 따르면 전국 280만 명에 달했던 노란조끼 시위 참가자 수는 최근 6000명 이하로 감소했다. 매주 토요일에 열리는 파리 시내 노란조끼 집회도 100명 이하일 때가 많아졌다.
무엇이 노란조끼 시위를 ‘그들만의 리그’로 만들었을까. 불과 9개월 전만 해도 노란조끼 시위대는 프랑스인 70∼80%의 지지를 받았다. 사회 양극화 문제를 건드린 탓에 시위가 프랑스를 넘어 유럽 곳곳으로 확산되면서 정치 세력화까지 눈앞에 뒀다. 하지만 현재 지지율은 한 자릿수다. “잘사는 도시 좌파의 반자본주의 운동으로 변질됐다”는 분석마저 나온다. 특히 노란조끼 시위가 일으킨 ‘폭력의 피로감’이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평가가 나온다.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노란조끼 운동의 쇠퇴는 폭력에 대한 피로와 두려움의 결과물”이라고 전했다. 시위대 스스로도 폭력으로 피해를 입었다. 15일 미 CNN에 따르면 노란조끼 시위 중 경찰이 쏜 고무총 등에 맞아 실명한 사람만 24명에 이를 정도였다.
이날 대혁명기념일 행사가 끝난 거리에 시위대가 놓고 간 노란조끼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의도가 선해도, 목적이 옳아도 ‘폭력’을 내세운 시위에는 한계가 있다. 버려진 노란조끼가 그 사실을 보여주는 듯했다.
김윤종 파리 특파원 zoz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