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개봉 ‘라이온 킹’으로 본 디즈니 영화의 숨은 전략
디즈니 애니메이션 속 ‘심바’가 25년이 지나 완벽한 컴퓨터그래픽 이미지로 재탄생했다. 디즈니 실사화 프로젝트의 하이라이트인 ‘라이온 킹’은 중국에서 12일 개봉한 후 흥행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국내에서도 원작 팬들의 추억을 자극할지 관심이 쏠린다.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제공
○ M&A 통해 ‘에버그린 전략’ 강화
‘뮬란’.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제공
설립 100년을 앞둔 디즈니는 세대를 건너며 콘텐츠의 수명을 수직으로 확장하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 디즈니 애니메이션은 1990년대 최고의 전성기를 맞았다. ‘인어공주’(1989년) ‘미녀와 야수’(1991년) ‘알라딘’(1992년) ‘라이온 킹’(1994년) 같은 작품들은 ‘클래식(고전)’이라 불릴 정도였다. 하지만 25∼30년이 지나면서 팬들의 추억 속에서 잠자는 신세였다. 열 살에 ‘라이온 킹’을 본 어린이는 서른다섯 살이 됐다. 디즈니는 실사화를 통해 옛 팬들은 물론이고 그들의 자녀까지 새로운 팬으로 끌어들이려고 한 것.
‘알라딘’.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제공
실사 영화 프로젝트를 가능하게 한 것은 눈부시게 발달한 컴퓨터 그래픽(CG)과 시각효과 기술(VFX)이다. 하늘을 나는 코끼리(덤보)나 램프에서 나오는 요정 지니(알라딘)를 어색함 없이 실제 배우들과 함께 한 화면에 등장시킨다.
‘라이온 킹’은 한발 더 나아가 미국 로스앤젤레스 근처 세트장에서 CG와 VFX로만 무파사와 심바의 왕국 ‘프라이드 랜드’를 재현해냈다. 제작진은 아프리카 케냐와 나미비아, 미국 캘리포니아의 옐로스톤 국립공원 등으로 최적의 ‘실사’를 찾아 나섰다. 약 130명의 애니메이터가 86종의 동물을 필름에 담았다. 동물들의 근육 움직임, 피부, 털을 표현하기 위해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데만 엔지니어 200여 명이 투입됐다. 감독 존 파브로는 “애니메이션도, 실사도 아닌 새로운 미디어”라고 했고, 해외 언론들도 시사 직후 ‘게임 체인저’(경쟁의 틀을 바꿔 버릴 정도의 혁신)라는 평을 쏟아냈다.
디즈니 클래식 애니메이션은 컴퓨터그래픽 기술로 날개를 달아 변형된 스토리와 캐릭터를 통해 새로운 시대상을 반영하고 있다. 왼쪽부터 ‘덤보’ ‘미녀와 야수’ ‘신데렐라’.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제공
‘겨울왕국’(2013년) ‘주토피아’(2016년) ‘모아나’(2017년) 등 비교적 최근 제작된 작품에는 주체적으로 운명을 개척하는 캐릭터들을 등장시키며 시대의 변화를 반영해 왔지만 실사 영화들은 ‘스스로 술탄이 되려 하는 자스민’(알라딘)이나 ‘흑인 에리얼’(인어공주)을 내세워 직설적으로 변화를 줬다.
그러나 ‘엘사’에게 바지를 입히거나 ‘자스민’에게 주체적인 목소리를 내겠다는 주제의식을 담은 노래 ‘스피치리스’를 부르게 하는 것이 겉치레에 불과하다는 지적도 있다. 여성 캐릭터들이 전체 서사의 틀 안에서 주체적으로 역할을 수행하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인어공주’ 실사 영화의 에리얼 역에 아프리카계 미국인 할리 베일리를 캐스팅한 것이 팬들의 반발을 샀다. 변화와 다양성을 포용하는 리메이크 방향과 원작을 최대한 그대로 누리고 싶은 팬들 사이의 간극이 단적으로 드러난 예다.
이서현 기자 baltika7@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