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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평인 칼럼]관제 민족주의 넘어 관제 쇼비니즘

입력 | 2019-07-17 03:00:00

청와대 참모 죽창가 발언에서 민족주의 넘어 쇼비니즘 느껴져
‘일본이 비난하니 文을 옹호’ 발상… ‘한국이 비난하니 아베 옹호’ 같아
제3국 중재마저 거부하고 나니 갈등 해결 로드맵 더 암담해져




송평인 논설위원

지난해는 제1차 세계대전 종전 100년이 되는 해였다. 그 전쟁에 대해 당시 외신들은 전문 사가(史家)들을 인용해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었는데 일어난 전쟁’으로 평가했다. 근시안적인 정치가들이 쇼비니즘, 즉 맹목적 애국주의에 이끌려 일으킨 전쟁이라는 것이다. 그런 전쟁이 역사상 최대의 인명 피해를 초래했다.

사라예보에서 세르비아계 청년이 오스트리아 황태자 부부를 저격했다. 독일이 오스트리아의 동맹이긴 하지만 황태자 부부는 오스트리아에서 그다지 인기가 없는 후계자였다. 게다가 독일이 오스트리아 편에 서서 세르비아 등 슬라브족의 후견자인 러시아와 전쟁을 하게 되면 러시아의 동맹국인 영국 프랑스와 동시에 전쟁을 치러야 한다. 그런 위험을 감수할 만한 국익이 없는데도 독일 지식인과 언론은 게르만족의 자존심을 내세우며 전쟁을 선동했다.

쇼비니즘이란 말은 본래 프랑스에서 왔다. 요즘도 그런지 모르겠으나 한때 교과서에도 소개된 알퐁스 도데의 ‘마지막 수업’도 쇼비니즘적이라는 냉정한 평가가 있다. 당시 프랑스와 영국에서도 쇼비니즘이 기승을 부렸지만 의회를 통해 제도적으로 여과되고 있었다. 그러나 전제주의 체제인 독일에서는 황제가 대중 여론의 직접적 영향을 받았다. 독일 대중에게 외교는 ‘하나를 주고 하나를 받는(give and take)’ 타협이 아니라 ‘이기느냐 지느냐’의 치킨게임이었다.

최장집 교수가 문재인 대통령의 올 3·1절 기념사를 놓고 관제(官製) 민족주의를 조장한다는 비판을 한 바 있다. 문 대통령이 지속적으로 조장해 온 관제 민족주의에서 국내적으로든 국외적으로든 어떤 생산적 이익이 기대되는지 알기 어려웠다. 그런 의미에서 맹목적이었다. 결국 그것이 발단이 돼 한일(韓日) 간 경제 갈등이라는 초유의 사태가 빚어졌다.

한일 양국에서 쇼비니즘의 기운이 강하게 일고 있어 우려된다. “한국이 미국에 울며 매달리고 있다” 식의 글로 한국을 조롱하는 산케이신문의 논조는 더러운 쇼비니즘이다. 하지만 청와대 참모가 전쟁도 아닌데 동학혁명 죽창가 운운한 것 역시 해로운 관제 쇼비니즘일 뿐이다. 쇼비니즘에 쇼비니즘으로 대응하는 것이야말로 악순환의 고리에 사로잡히는 어리석은 짓이다.

일본이 문 대통령을 비난하니 문 대통령에게 힘을 실어줘야 한다는 논리는 한국이 아베 총리 비난하니 아베 총리에게 힘을 실어줘야 한다는 논리처럼 졸렬하다. 과거사 문제가 경제 갈등이 되도록 방치한 쪽도, 과거사 문제를 경제 갈등으로 몰아간 쪽도 잘못이라면 서로 상대편 정부를 비판해 상대편을 자극하기보다는 자국 정부를 비판해 실용적 방향으로 견인하는 것이 문제를 해결하려는 태도다.

청와대는 어제 강제징용 문제와 관련해 제3국 중재로 가자는 일본의 요구를 거부했다. 일본의 요구대로 중재로 가기로 합의한다면 일본의 수출 규제는 부당해지는 모양새가 되고 일단 격화하는 갈등을 잠재울 계기를 마련할 수 있다는 희망이 있었는데 그것마저 사라졌다.

제3국 중재로 가자는 일본의 요구를 받아들이자는 주장이 나온 것은 중재에 승산이 있다고 봐서 그런 것은 아니다. 설혹 중재에 지더라도 한국 정부는 ‘중재에 따라 어쩔 수 없이 배상한다’는 퇴로를 얻게 된다. 중재가 성립하지 않아 국제사법재판소(ICJ)까지 가서 패소하는 경우에도 그렇다. 한국 정부가 배상할 액수가 적지 않겠지만 무역 갈등으로 초래될 막대한 손해와 비교하면 별게 아닐 수 있다.

물론 최선책은 제3국 중재나 ICJ로 가지 않고 해결하는 것이다. 우리가 이길 수 있다는 법률가들도 없지 않지만 그 반대가 대부분이다. 지게 되면 돈이 문제가 아니라 국가적 수치를 당하고 한일 관계에서 수세에 몰릴 수 있다.

강제징용 피해자의 개인적 청구권이 남아 있다는 한국 대법원의 배상 판결은 대법관들 다수가 외교적 청구권에 대해 말을 얼버무려서 그렇지, 일본 기업만이 아니라 한국 정부를 향한 것이기도 하다. 그 의미를 문재인 청와대가 알아듣지 못한 척해서 지금과 같은 상황에 왔다.

무역 갈등은 커져 가는데 국제 중재나 재판도 안 되고 우리 정부가 전향적인 배상안을 내놓을 의지도 보이지 않고 그렇다고 일본 기업에 배상을 강제할 수단이 있는 것도 아니다. 이제 가능한 로드맵조차 보이지 않으니 암담할 뿐이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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