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릉도와 독도 침략하려던 러시아-일본 제국 행태 연구 1903년 러시아 선원 보고서 통해 불법 거주 일본인 행패도 드러나
블라디보스토크에 기항한 러시아의 군사 수송선 야쿠트호. 1903년 울릉도를 조사했다. 김영수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 제공
1903년 9월 초 러시아 군사수송함 야쿠트호에 통역관으로 동승해 울릉도를 조사한 레베제프(당시 블라디보스토크 동방대 3학년)의 울릉도 조사보고서다. 대한제국은 1900년 칙령 제41호를 내려 울릉도 도감을 군수로 격상해 일본인의 울릉도 불법 거주와 삼림 벌채를 근절하려 했지만 피해는 여전히 극심했다. 보고서는 “성인 양팔 길이의 5배가 되는 거목을 찾을 수 없다”며 “계곡에 방치된 거목의 그루터기를 통해 일본인의 약탈 흔적을 살펴볼 수 있다”고 했다.
김영수 동북아역사재단 독도연구소 연구위원(교육연수원 교수)은 일본과 러시아 제국이 울릉도와 독도를 어떻게 바라보고 침략하려 했는지 조명한 연구서 ‘제국의 이중성: 근대 독도를 둘러싼 한국·일본·러시아’를 최근 발간했다. 김 연구위원은 “제국은 자국 수산업자, 상인의 경제 활동과 이권을 비호하는 동시에 이들을 군사적 침략의 도구로 활용했다”고 밝혔다.
레베제프는 울릉도에서 불법 거주하고 있는 일본인의 행패도 기록했다. 보고서는 대략 한국인 2500명, 일본인 180명 정도가 울릉도에 산다면서 “일본인들은 한국인을 업신여겼고 무장한 일본인 2, 3명이 한국인의 집에 나타나서 살림을 자기 물건처럼 다루며 폭력을 행사했다”고 썼다. 일본은 도동항에 불법적으로 경찰서까지 설치하고 있었다.
레베제프는 또 “일본인은 총알이 없어서 한국인과 맞서지 못했다. 일본인은 한국인의 집을 지나갈 때 한국인과 눈을 마주치지 않고 고개를 반대편으로 돌렸다”고 기록했다. 김 연구위원은 “불법 벌목을 가로막는 한국인을 몰아내고, 울릉도를 아예 점령하고 싶었던 일본인의 내심이 포착된 대목”이라고 설명했다.
일본이 독도를 영토로 편입했다고 주장하는 1905년 ‘시마네현 고시 40호’가 공식 고시됐다는 증거는 없다고 봤다. 시마네 현청은 1945년 8월 현청사가 전소될 때 고시 40호 원본이 소실됐다고 주장한다. 김 연구위원은 “고시 40호의 사본은 필기체인 표지와 달리 인쇄체이고 현지사의 도장과 서명도 없으며, 현지사는 고시가 이뤄졌다는 1905년 2월 22일에 앞서 19일부터 3월 1일까지 도쿄 출장으로 부재했다”며 “고시 사본이 조작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