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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이 되려 했던 한 조선여인의 비극

입력 | 2019-07-18 03:00:00

연극 ‘그때, 변홍례’ 21일까지




부유층 일본인 사장 역 김동우(가운데)가 집에서 일하는 하녀 역 변홍례(이수현)에게 흑심을 품고 접근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극단 하땅세 제공

“탐정소설 가튼 고녀(하녀) 교살사건, 남의 집 고녀를 밤새에 죽여…엽방에서 교살되엇고 얼굴과 기타에 타살된 곳도 잇섯다 한다.”(1931년 8월 4일 동아일보)

일제강점기 한반도를 충격에 빠뜨렸던 살인사건이 특수음향, 그림자와 만나 무대에서 마법처럼 재현된다. 연극 ‘그때, 변홍례’는 인간답게 살기 위해 일본인이 되려 했던 한 한국인의 욕망을 그린 작품. 신파에 기대지 않으면서도 당대 한국인의 처연한 자화상을 떠올리게 한다. 지난해 초연 당시 한국연극평론가협회가 선정한 ‘올해의 연극 베스트3’에 뽑혔으며, 6월 스페인 마드리드 초청공연을 마친 뒤 다시 막을 올렸다.

부산의 한 일본인 가정 하녀 변홍례는 한국인의 정체성을 버리고 일본인의 탈을 쓴 채 사는 인물. 언젠가 자신도 동등한 인간으로 대접받을 것이라는 기대와는 달리 일본인들은 그를 이용하기에 바빴고, 치정사건에 엮여 살해당한다. 타살 정황과 흔적이 명확함에도 일본인 용의자는 무죄 판결을 받았고, 진실도 그 자리에 멈췄다.

무거운 주제와 달리 극을 전개하는 방식은 놀이에 가까울 정도로 발랄하다. 배우의 희극적 몸동작에 다른 배우가 무성영화 후시녹음처럼 익살스러운 소리를 덧입힌다. 비닐, 배추, 나무, 구두 등 온갖 소품을 활용한 음향에 과장된 몸동작까지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면서 관객의 웃음이 끊이지 않는다. 기발한 그림자, 조명 연출까지 더해져 80분 러닝타임 내내 보고 듣는 맛을 꽉 채웠다. 전개 방식이 유쾌하고 가벼우나, 극의 메시지 자체를 해치지 않는 점이 매력적이다. 줄거리 전개에 군더더기가 없기 때문. 이따금씩 배우들이 ‘놀이의 차원’에서 불필요하게 객석으로 향하거나 과장된 웃음과 박수를 유도한다. 이런 군살을 조금만 덜어낸다면 평단을 넘어 관객에게도 최고의 ‘레트로 극’이 될 만하다. 21일까지 서울 대학로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 전석 3만 원. 만 15세 이상.
 
김기윤 기자 pep@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