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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지윤 요리쌤의 오늘 뭐 먹지?]쫀득쫀득 젤라토와 달콤한 ‘서울의 휴일’

입력 | 2019-07-19 03:00:00


서울 마포구 glt젤라또의 2가지 맛 컵 젤라토. 홍지윤 씨 제공

홍지윤 쿠킹클래스 쉬포나드 운영자

제2차 세계대전 후 만들어진 최고의 로맨스 무비는 ‘로마의 휴일’이다. 당대 최고의 미녀 오드리 헵번이 상상이 아닌 현실 속의 공주로, 선이 굵은 미남 그레고리 펙이 공주와 사랑에 빠지는 신문기자로 나왔던 달콤한 스토리가 전쟁으로 상처 입은 사람들의 마음을 잠시나마 녹여주었기 때문이다. 앤 공주로 분한 헵번이 머리를 짧게 자르고 팔랑거리는 플레어스커트를 입고서 스페인 계단을 내려오며 아이스크림을 먹는 신은 영화 속 최고의 장면으로 꼽힌다. 헵번의 요정 같은 미모가 명장면을 만든 것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지만 그 덕분에 로맨스처럼 달콤한 아이스크림은 로마에 가면 반드시 먹어야 할 이탈리아를 상징하는 음식이 됐다. 말하자면, 이탈리안 먹방이 된 셈이다.

헵번이 먹은 것은 정확히 말하면 아이스크림이 아닌 젤라토(gelato)다. 이탈리아어로 ‘얼리다’를 뜻하는 젤라레(gelare)에서 온 말로, 우유와 달걀, 설탕을 기본 재료로 하는 것은 아이스크림과 같지만 혀에 닿는 순간 녹아버리는 아이스크림의 매끈하고 부드러운 질감과는 달리 살짝 쫀득한 느낌이다. 맛과 향을 위해 첨가하는 과일, 초콜릿, 견과류 등 기타 재료의 함량을 높이고 천천히 혼합하는 과정을 통해 공기 함유량이 낮아지기 때문으로 본다.

이탈리아는 일조량이 풍부한 덕분에 당도가 높은 다양한 과일이 자라며 고소하고 질 좋은 견과류가 생산돼 맛있는 젤라토를 만드는 데 최적의 조건이다. 얼음에 꿀이나 우유를 섞어 먹었다는 최초의 빙과에 대한 기록은 오래전부터 있었지만 오늘날 이탈리아 젤라토의 기원은 이탈리아의 남부 시칠리아다. 10세기경 스페인과 시칠리아 섬을 지배했던 아랍인이 얼음을 부숴 과일즙을 섞어 먹던 것을 발전시킨 형태가 젤라토다. 이후 본토인 나폴리, 로마, 피렌체, 토리노, 산악지대인 돌로미티까지 퍼져나갔고 젤라토 기계가 발명된 이후에는 유럽 전역에서 즐겨 먹는 디저트가 됐다.

대학도시로 알려진 볼로냐는 젤라토와 인연이 깊다. 젤라토 대중화에 기여한 전자동 젤라토 기계가 최초로 만들어진 곳으로, 젤라토 제조법을 가르치는 학교가 있다. 이 학교가 배출한 젤라토 전문가는 9만여 명이며 그중에는 서울에서 현재 젤라테리아(gelateria)를 운영하는 이도 있다. 이탈리아에서 유학한 한국인 젤라티에리(젤라토를 만드는 사람)의 수준도 본토 못지않다. 우리의 주식인 쌀을 비롯해 초당옥수수, 밤, 고구마, 치즈에 송로버섯까지 국내산 재료와 서양 재료를 아우르는 다양한 맛과 향으로 꽤 훌륭한 젤라토를 만들어낸다. 마음만 먹으면 이제 서울에서도 이탈리아를 여행하듯 1일 1젤라토를 맛볼 수 있다. 헵번 같은 개미허리만 포기한다면 말이다.

● 젤라띠 젤라띠=서울 서초구 신반포로 176 센트럴시티 파미에스테이션 2가지 맛 1컵 4500원

● 젠제로=서울 강남구 선릉로126길 14 예우빌딩 1층, 1인용 콘·컵 5000원

● glt 젤라또=서울 마포구 양화로23길 10-8 2가지 맛 컵·콘 4500원

홍지윤 쿠킹클래스 쉬포나드 운영자 chiffonade@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