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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저임금, 일자리와 경쟁력 파괴하는 핵폭탄 되나[동아 시론/김대호]

입력 | 2019-07-20 03:00:00

매년 올려도 노동계는 파업 으름장… 주휴수당 감안하면 세계 최고 수준
경직된 고용구조 얽혀 기업들 시름… 복잡한 여건 고려없이 인상 결정
이런 나라에서 투자와 고용 바라나




김대호 사회디자인연구소장

최저임금위원회는 12일 2020년 최저임금을 시간당 8590원으로 결정했다. 올해보다 2.87%, 240원 올랐다. 2018년(16.4%), 2019년(10.9%)에 비해 인상 폭이 매우 작다고 양대 노총은 거세게 반발하며 총파업을 공언했다. 이는 1988년 최저임금 제도가 시행된 이래 작년 재작년 등 몇 년을 제외하고는 거의 연례행사가 됐다.

한국의 최저임금은 시간당 임금 수준만 보면 그리 높아 보이지 않지만, 실제로는 세계 수위권이다. 고용주가 느끼는 부담 역시 세계 최고 수준이다. 임금 수준, 포함(산입) 범위, 인상 속도, 산업과 지역을 가리지 않는 일률성, 어기면 기업주 형사처벌, 고용임금 유연성 부재 등을 종합하면 그렇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미국 달러화(구매력환율)로 환산한 국가별 최저임금을 집계해 놓았다. 지난해 기준 시간당 최저임금은 호주 12.1달러, 프랑스 11.5달러, 독일 10.9달러, 영국 9.6달러, 일본 8.1달러, 한국 7.9달러(7530원), 미국 7.3달러다. 한국은 올해 8.76달러(8350원)로 일본을 추월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한국은 대부분의 국가에는 없는 주 15시간 이상 근로자에 대한 주휴수당 제도가 있기 때문에 실제로는 20%가 더 많은 10.5달러로 봐야 한다. 이 금액은 영국을 추월하고 독일 수준에 가깝다.

주요 선진국의 인상 추세를 감안하면 한국의 최저임금 인상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할 수 있다. 미국은 2010년 이후 8년째 동결이고, 독일도 2017년 이후 2년째 동결이다. 반면 한국은 연(年)간으로 환산하면 올해 2094만1800원이고, 최저임금 1만 원이 되면 연 2508만 원으로 세계 최고 수준이 된다. 그런데 연간 최저임금 통계는 주휴수당(20%)까지는 포괄하지만 여전히 포괄하지 않는 것이 많다. 1년이 지나면 발생하는 퇴직금(한 달 치 월급·연봉의 8.33%)과 연차휴가보상비(26일 치·7% 이상)와 식대가 대표적이다.

실제 기업이 느끼는 가장 큰 부담은 정규직의 고용임금 유연성이 거의 없어서 업무량 및 근로자 생산성과 임금수준, 근로시간, 근무형태, 숫자 등을 유연하게 조합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현 정부와 노조는 파트타임 근로자를 비정규직이라며 백안시하면서 ‘정년보장직=정규직’을 당연시하는데, 문제는 한국 노동관계법에서 정규직의 경우 본인의 의사에 반해 구조조정하기 극히 어렵게 만들어 놓았다는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임금은 생산성의 함수가 아니라, 근속연수와 단결투쟁력의 함수로 여겨지는 게 현실이다. 그런 점에서 한국에서 단 한 명이라도 고용하는 사람은 엄청난 위험과 부담을 짊어질 수밖에 없는 정말 ‘위대한 존재’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최저임금은 사용자로 하여금 영업과 폐업(혹은 해외 이전), 4∼5명 고용과 2∼3명 고용 혹은 자동화·무인화, 15시간 이상 근로계약과 초단시간 근로계약 등을 불가피하게 선택하도록 압박한다. 따라서 최저임금은 취약근로자를 보호하는 장치이기도 하지만, 취약근로자를 아예 실업자나 하루 두세 개 아르바이트를 뛰는 ‘메뚜기’로 만들 수 있는 장치이기도 하다.

이런 점들을 감안할 때 최저임금의 결정 과정에서는 반드시 고려해야 하는 요인들이 있다. 바로 산업·업종별 경영 사정과 임금 분포를 살피고, 지역별 생활비 수준과 고용 사정도 검토하고, 퇴출당한 노동의 재교육을 통한 상향이동 가능성과 사회안전망 수준도 꼼꼼히 챙겨야 한다.

그런데 현재의 최저임금위원회는 이런 복잡한 여건에 대한 충분한 검토 없이 노사 임금이나 단체협상 하듯 최저임금을 결정하고 있다. 노동(상품)의 가격이자 기업의 노동비용이 이렇게 크게 요동치는 불확실성 가득한 나라에서 어떻게 투자와 고용이 활발하게 일어날 수 있을까? 도대체 언제까지 이렇게 제대로 된 노사정 대표 아닌 대표들이 밀고 당기고, 내지르고, 엄포 놓고, 총파업과 총사퇴를 반복하는 모습을 지켜보아야 하나? 한마디로, 최저임금과 52시간 근로상한제는 지방이나 산업 차원에서 완충할 여지가 없는 ‘초강력 규제’다. 지나치면 일자리와 산업경쟁력을 파괴하는 핵폭탄이 된다. 그런데 정부는 이를 아예 선심의 대상으로 삼아 터뜨려 버렸다고 할 수 있다.
 
김대호 사회디자인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