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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 이야기]폭염에 죄수 건강까지 염려한 세종

입력 | 2019-07-20 03:00:00


반기성 케이웨더 예보센터장·한국기상협회 이사장

“정말 작년같이 더우면 어떻게 살아요?” 지난해 여름은 강렬한 태양빛이 대한민국을 삼켰다. 114년 만에 더위에 관한 모든 기상관측 기록을 뛰어넘었다. 최고기온 40도를 6곳이나 기록했다. 아침기온이 30도를 넘는 초열대야가 발생했다. 폭염 일수와 열대야 발생 일수도 가장 길었다. 온열질환으로 4000여 명이 쓰러졌다. 극한의 폭염이었다. 올해도 만만치 않다. 세계기상기구는 6월이 지구 관측 사상 가장 무더운 달이었다고 발표했다. 폭염이 휩쓴 유럽은 그야말로 핫 플레이스였다. 우리나라의 올여름은 얼마나 더울까?

조선시대 사람들은 폭염을 ‘교양(驕陽)’이라 불렀다. 얼마나 뜨거웠으면 ‘교만한 태양’이라고 불렀을까. 조선전기의 학자 김종직은 “때는 7월인데도 뜨거운 태양이 계속돼 수많은 농작물에 흉황이 들어가는구나”라며 뜨거운 태양을 교양이라 기록했다. 시대가 흘러 조선후기 학자 장유의 글에서도 폭염을 교양이라 부른다. “올해의 이 가뭄은/그 누구의 책임인가/교만한 태양 치솟아서”라며 폭염을 가져온 태양을 원망했다.

멋진 국가 리더는 누구일까. 국민을 배려하는 겸손한 왕이 아닐까. 성군(聖君) 세종대왕이 그런 왕이다. 세종 시절 가뭄과 폭염이 유난히 심했다. 백성 걱정이 끔찍했던 세종은 감옥에 갇힌 죄수까지도 배려했다. 폭염이 닥치자 죄수가 더위에 목숨을 잃을까 염려한 세종은 “옥에 있으면 더위가 들기 쉬워서 혹은 생명을 잃는 수가 있으니 참으로 불쌍한 일이다. 더운 때를 당하거든 동이에 물을 담아 옥중에 놓고 자주 물을 갈아서 죄수로 하여금 손을 씻게 하여 더위가 들리지 않게 하는 것이 어떠한가”라고 말한 기록이 세종실록 30년 7월 2일에 나온다. 여기에 더해 세종은 가벼운 죄를 범한 죄수는 여름철에 잠시 석방하기도 했다. 극한의 폭염으로 고통 받는 모든 백성을 평등하게 보살핀 것이다. 왜 세종이 성군이라고 불리는지 알 만한 대목이다.

조선후기의 명군이라 불리는 영조와 정조도 폭염 때 백성을 배려한 것으로 유명하다. 당시에는 폭염으로 인한 가뭄을 해결하기 위해 왕이 주관해서 기우제를 드리곤 했다. “백관은 그래도 나무 그늘에 갈 수 있지만, 군병(軍兵)들은 노천의 뜨거운 태양 아래에 서 있어야 하니, 이것이 가엾다.” 병졸들의 건강을 배려한 영조는 뜨거운 폭염일에 기우제 행사를 포기한다. 그 손자 정조도 영조 못지않다. 정조 18년, 여름에 수원 화성을 축조하는 일을 하던 일꾼들이 폭염으로 쓰러지기 시작했다. 이에 정조는 “백성이 불쌍하여 처방을 연구해 내어 조제하여 내려 보내니 속이 타거나 더위를 먹은 증세에 한 정 또는 반 정을 정화수에 타서 마시도록 하라”고 지시했다는 기록이 정조실록 18년 음력 6월 28일에 나온다. 폭염에 노역하는 백성을 걱정한 정조는 열을 식혀 주고 더위를 쫓는 약인 ‘척서단’을 무려 4000정이나 하사했다. 그리고 폭염이 심한 날에는 일꾼들에게 음식을 나누어주고 노고를 위로하며 행사를 베풀었다고 전해진다. 국민을 배려하는 겸손한 지도자가 있는 국민은 행복하다.
 
반기성 케이웨더 예보센터장·한국기상협회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