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너희 나라로 돌아가라”라는 트윗을 날린 것에 대해 보도하는 미국 CNN방송. 자막에 ‘인종차별 공격’이라고 쓰여 있다. 사진 출처 CNN 웹사이트
정미경 국제부 전문기자 前워싱턴 특파원
미국인들은 ‘racist(인종차별주의)’ 단어에 매우 민감합니다. “당신 racist야”라고 하면 가장 큰 욕입니다. 그래서 언론은 고민에 빠졌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은 확연하게 인종차별적 의미를 담고 있지만 그렇다고 쉽게 ‘R 단어(racist)’를 입에 올릴 수 없으니까요.
△Trump Targets Lawmakers in Racially Charged Tweets.
월스트리트저널(WSJ)의 제목입니다. 언론은 ‘racist’라고 강하게 밀어붙이기가 꺼려질 때 ‘racially charged’ ‘racially loaded’라고도 순화해 말합니다. 직역을 하자면 ‘인종차별적 의미를 한가득 담은’ 정도가 될까요. 올해 초 AP통신의 모범 기사작법 교과서인 스타일북은 ‘racially charged’ 표현을 쓰지 말 것을 권했습니다. 애매모호하게 과잉 순화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죠.
뉴욕타임스(NYT) 기사 중 일부분입니다. ‘Racist’ 단어를 쓰기는 쓰되 많은 사람이 동의한다는 점을 강조하는 작법입니다. ‘사람들 사이에서 폭넓게 인종차별주의 트윗이라고 받아들여진다’는 의미입니다. ‘Many people saw the tweets as racist’(폭스뉴스) ‘Critics are calling the tweets racist’(ABC뉴스) 등도 비슷한 부류입니다. 이런 걸 ‘euphemism(완곡어법)’이라고 합니다.
△CNN says ‘racist’ more than 1100 times regarding Trump ‘go back’ tweet.
NYT도, WSJ도 주저할 때 CNN은 처음부터 ‘racist’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한 언론기관 조사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의 ‘돌아가라’ 발언 뒤 이틀 동안 CNN의 이런저런 프로그램에서 무려 1100차례나 ‘racist’ 단어가 등장했다고 합니다. 노래 메들리도 아니고 특정 단어가 이렇게 많이 등장할 수도 있나요. 어쨌든 CNN이 노래를 불러서 그런 건지 몰라도 다른 매체들도 슬금슬금 ‘racist’ 딱지를 붙이더군요.
정미경 국제부 전문기자 前 워싱턴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