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비영리 안보 싱크탱크인 선진국방연구센터(C4ADS)의 제이슨 아터번 선임연구원은 최근 발표한 ‘북한의 전략적 조달 네트워크’ 분석 보고서가 나온 과정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이 보고서는 김 위원장의 벤츠 차량 ‘마이바흐 S600’ 두 대가 한국과 일본을 포함한 5개 국가를 거쳐 북한으로 밀반입되는 과정을 상세히 분석한 내용으로 주목받았다.
제이슨 아터번 선임연구원
보고서에 따르면 2015~2017년 사이 북한에 사치품을 수출하는 과정에는 무려 90개 나라가 관여했다. 이번에 경로가 확인된 김 위원장의 마이바흐 S600 차량의 경우 이를 적재한 컨테이너가 네덜란드 로테르담 항구에서 출발해 중국 다롄→일본 오사카→한국 부산항→러시아 나홋카까지 선박으로 옮겨졌다. 이후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북한 화물기를 통해 북한으로 최종 반입된 것으로 보인다.
아터번 선임연구원은 “이 차량이 네덜란드에서 최초 선적됐을 때부터 여러 기업들이 북한행을 계획하고 움직인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도영 선박(Do Young Shipping)’이라는 기업이 연루돼 있는 것과 관련해서도 “문제의 차량을 운송한 선박의 소유회사로, 앞서 북한산 석탄의 불법 환적에 연루됐던 선박도 소유하고 있다”며 “여러 정황을 고려했을 때 북한으로 들어갈 것을 몰랐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주장했다.
북한 외에도 이란, 시리아 등으로 제재 품목을 밀반입하는 기업들은 선박의 자동식별장치(AIS)를 끄고, 마셜제도 같은 곳에 등록해서 존재를 숨기는 등 공통점을 보인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다만 그는 “개별 기업들의 사례가 정부 차원의 개입으로 곧바로 이어지지는 않는다”며 한국 정부의 연루 가능성에 대해서는 선을 그었다.
그는 북한의 사치품 수입 제재에 대해 “사치품은 개념 자체가 매우 주관적이고, 나라마다 분류와 정의가 다르다”며 “유엔 제재 대상으로 올랐을 때부터 그 정확한 범위와 대상을 놓고 혼란이 적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런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북한의 사치품을 제대로 한 번 파악해 볼 필요가 있다고 느꼈다는 것. C4ADS는 각 브랜드의 ‘럭셔리 라인’ 분류 여부, 기준 가격대, 소비시장에서 받아들여지는 인식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했다. 1대당 가격이 50만 달러(약 5억 8800만 원)에 이르는 벤츠의 최고급 모델은 ‘사치품’이라는 데 이견이 없어 곧바로 경로 분석에 들어갔다고 한다.
C4ADS는 이번 보고서를 낸 이후 이름을 밝히기 어려운 여러 나라의 각종 기관에서 연락을 받았다고 한다. 그는 “비영리 단체로써 우리의 목표는 정부를 포함한 기관들이 제재를 이행하고 불법행위를 감시하는 데 도움을 주는 것”이라며 “이들에게 직접적으로 제공하는 비공개 보고서도 많다”고 설명했다. 그는 “북한은 데이터가 부족해 분석이 쉽지 않은 국가”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데이터 과학의 관점에서도 매우 흥미로운 분석대상”이라고 덧붙였다.
워싱턴=이정은 특파원 light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