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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북 쌀 지원 당시 北, ‘쌀소주’ 대량 수출

입력 | 2019-07-22 16:21:00

겹눈으로 본 북한 │ 北에 ‘쌀’ 주고 ‘뺨’ 맞은 文정부
● 쌀로 술 빚어 수출, 뭔 식량난?
● 中 유엔 제재 지키면서도 北 숨통 열어줘
● 압록강 밀수꾼들 단속 심해 돈 벌러 대림동 왔다
● 반 토막 난 해외 송출 北 노동자…中, 1개월 비자로 계속 고용
● 제재 굴복 안 해…핵 쥔 채 버틸 것




평양에서 쌀 등을 원료로 만든 ‘평양주’

‘쌀’ 주고 ‘뺨’ 맞았다. 

6월 19일 통일부가 대북 쌀 지원을 공식화하고 5만t을 지원하기로 했다. 쌀의 수송·배분을 세계식량계획(WFP)에 위탁하는 업무협약 체결이 마무리 단계다(7월 15일 현재). 6월 5일 인도적 지원 명목으로 국제기구에 800만 달러(94억 원)를 공여한 데 이은 추가 대북 지원이다. 

한국은 북한에 직접 쌀을 전달하는 것을 검토했으나 평양은 코웃음 치면서 협의를 거부했다. 고마워하기는커녕 “겉치레로 생색낸다”고 비난했다. 달라고 하지도 않는 데 안달복달 퍼준 셈이다. 

북한 내부의 소식통을 통해 평양의 실상을 들여다보는 대북 전문가들은 하나같이 “쌀이 부족하지 않다”고 전한다. 북한 식량난 조짐은 한국 정부의 상상 속에 존재하는 허상인 셈이다. 20년 넘게 북한 내부를 들여다본 김영환 ‘준비하는 미래’ 대표는 이렇게 말한다. 

“식량이 부족하지 않다. 식량난 조짐도 전혀 없다. 대부분의 제품이 그렇지만 쌀은 특히 시장화가 잘돼 있다. 쌀이 부족하면 시장에서 곧바로 영향이 나타나게 마련인데, 쌀값이 대단히 안정돼 있다. 지난해와 비교하면 오히려 쌀값이 떨어졌다. 다만 유엔 제재로 인해 소득이 줄어들었다. 고소득층 중심으로 소득이 크게 줄어든 것으로 판단되는데 낙수 효과로 인해 저소득층에도 영향이 미친다. 고소득층은 소득이 줄어도 식량 구입에 아무런 문제가 없으나 저소득층은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쌀이 부족한 게 아니라 시장에서 쌀을 살 돈이 없는 사람이 생긴 것이다.”

쌀 부족하지 않아

쌀이 부족하던 북한은 오랫동안 잡곡으로 술을 담갔다. 1990년대 식량난 시기엔 대형 술 제조공장이 대부분 문을 닫았다. 식량 사정이 개선돼 현재는 쌀로 술을 빚는다. 평양에 위치한 대동강식료공장에서 생산하는 ‘평양소주’ ‘평양주’의 원료는 쌀과 옥수수로, ‘참이슬’ ‘처음처럼’ 같은 희석주가 아니라 증류주다.
 
대동강식료공장은 “쌀에 누룩을 넣는 선조들의 자연발효법에 의한 술 제조 방법을 발전시키고 여기에 세계적으로 유명한 술 제조 기술을 결합해 만든 소주”라고 자사 제품을 홍보한다. ‘평양소주’ ‘평양주’는 중국으로 대량 수출된다. 대북 소식통들은 “쌀로 술을 빚어 수출까지 하는데, 뭔 쌀 부족이냐”고 꼬집는다. 정부가 쌀 지원을 결정하기 이전인 5월에도 북한 공장에서 쌀로 만든 술이 중국에서 인기리에 팔렸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북한 곡물 생산량은 1990년대 연간 350만t까지 떨어졌다가 2012~2017년 450만t으로 회복됐다. 시장화가 확대돼 지역 간 식량 배분 효율성도 개선됐다. 식량은 대북제재 대상도 아니다. 쌀이 부족하면 미사일 개발하고 원산갈마해안관광지구에서 건설공사를 할 돈으로 식량을 수입하면 그만이다. 

탈북 언론인 주성하 씨는 북한 내부 자료를 근거로 삼아 “북한의 인구 통계가 조작됐다”고 말한다. 북한 당국이 인구를 늘려 통계를 작성함으로써 WFP와 유엔 식량농업기구(FAO)가 곡물 소요량을 과대 추정하게 한다는 것이다(‘NK LOGIN’ ‘450만 명이 부풀려진 북한 인구통계의 비밀’ 포스팅 참조). 

“남조선이나 똑바로 챙기라”

권정근 북한 외무성 미국국장은 한국 정부가 쌀 지원을 공식화한 지 8일 만인 6월 27일 ‘무례하기 짝이 없는’ 논평을 발표했다. 

“북·미관계를 중재하는 듯이 여론화하면서 몸을 올려보려 하는 남조선 당국자들에게도 한마디 하고 싶다. 지금 남조선 당국자들은 저들도 한판 끼여 무엇인가 크게 하고 있는 듯한 냄새를 피우면서 제 설 자리를 찾아보려고 북남 사이에도 여전히 다양한 경로로 그 무슨 대화가 진행되고 있는 듯한 여론을 돌리고 있다. 

북·미대화 당사자는 말 그대로 우리와 미국이며 북·미 적대관계의 발생 근원으로 보아도 남조선 당국이 참견할 문제가 전혀 아니다. 세상이 다 알고 있는 바와 같이 북·미관계는 우리 국무위원회 위원장 동지와 미국 대통령 사이의 친분관계에 기초해나가고 있다. 

우리가 미국에 연락할 것이 있으면 북·미 사이에 이미 전부터 가동되고 있는 연락 통로를 이용하면 되는 것이고 협상을 해도 북·미가 직접 마주 앉아 하게 되는 것인 만큼 남조선 당국을 통하는 일은 절대로 없을 것이다. 

남조선 당국자들이 지금 북·남 사이에도 그 무슨 교류와 물밑대화가 진행되고 있는 것처럼 광고하고 있는데 그런 것은 하나도 없다. 남조선 당국의 제 집의 일이나 똑바로 챙기는 것이 좋을 것이다.” 

국가정보원 북한담당 기획관으로 일한 구해우 미래전략연구원 원장의 분석이다. 

“북한은 허투루 담화를 내놓는 법이 없다. 권정근의 담화는 2018년 신년사부터 이어진 남북관계를 종합적으로 평가한 후 정교하게 가다듬어 내놓은 것이다. 핵심 포인트는 문재인 정부가 북핵 협상과 관련해 역할을 한 게 하나도 없다는 사실이다. 문 대통령은 6월 30일 김정은-트럼프 판문점 회동 때도 북한과 미국 양쪽으로부터 거절당해 들러리만 섰다.”

현실과 선전 사이 ‘갈팡질팡’ 노동신문

중국에서 일하는 북한 노동자들. [뉴스1]


북한은 올해 들어 다시금 자력갱생(自力更生)을 강조한다. 대북제재가 고통을 준다는 뜻이다. 7월 11일자 노동신문은 경제 업적을 열거하면서 이렇게 논평한다. 

“자력갱생의 혁명정신은 세계 그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조선의 힘, 건설의 무기다. 세계의 곳곳에 때 없이 들이닥치는 제재의 선풍 앞에 사람들이 당혹감을 금치 못할 때 더 엄혹한 시련의 돌풍을 자력자강의 열풍으로 쳐갈기며 나가는 우리의 건설이야말로 강대한 조선의 힘을 세계 만방에 과시하는 사회주의 승리의 장엄한 행진곡이다.” 

노동신문의 논평이 최근 현실과 선전 사이에서 갈팡질팡할 때가 많다. 시장화·개방화가 심화된 북한 경제가 제재 탓에 상당한 타격을 받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김병연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에 따르면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가 강화되면서 2017년 북한의 수출이 전년 대비 37.2% 감소했으며, 2018년에는 2017년에 비해 88%가량이 다시 감소했다(‘북한의 오늘 Ⅱ’ 74쪽). 수출이 줄어들면 외화 수입이 감소해 경제에 충격을 주며 경제성장률 하락을 가져온다. 

중국은 북한이 숨 쉴 구멍은 열어주되 유엔 제재는 준수하는 것으로 보인다. 석탄, 섬유제품 등의 수출금지 제재는 최대 강도로 실행되고 있다. 다만, 해외 취업 근로자에 대한 제재는 최대 강도로는 실행하지 않고 있다. 올해 4월 북한 만포와 중국 지안(集安)을 잇는 대교가 개통됐다. 지안 도로 통상구(公路口岸)는 10만㎡ 대지에 세관, 출입국 사무소, 물류 창고를 갖췄다. 통상구 근처에 자유무역구를 건설하는 것도 계획돼 있다. 

중국 기업인의 기대가 컸으나 만포-지안 대교는 을씨년스러울 만큼 물동량이 적다. 지안 세관 관계자는 “중국으로 들어오는 물품은 거의 없다. 건설자재를 비롯해 북한으로 나가는 물품은 있다”고 말했다. 

압록강변에는 중국어와 한국어로 “비법 월경 인원을 고용하는 것을 엄금한다”고 적힌 현수막이 걸려 있다. 북·중 국경을 50차례 넘게 답사한 김형덕 한반도평화번영연구소 소장은 “중국에 나와 있는 북한 사람들이 ‘미국이 세긴 세다, 중국도 꼼짝 못 한다’면서 전전긍긍한다”고 했다.

“미국이 세긴 세다”

국경 지역에 거주하는 중국 조선족들은 “밀수꾼들이 일감이 사라져 다들 한국으로 돈 벌러 갔다”고 했다. 서울 영등포구 대림동에서 식당을 하는 중국동포 이석철 씨는 “서울이 참 글로벌한 도시”라면서 “살벌한 단속 탓에 국경에서 밀무역하던 조선족들이 일거리를 찾아 대림동으로 모여들었다”고 전했다. 

옌볜조선족자치주 투먼에는 ‘조선공업원’이 있다. 중국인 공장주가 북한 노동자를 고용해 의류, TV 등을 생산한다. 옌볜자치주 7개 지역 중 ‘조선공업원’이라는 명칭을 붙인 공단은 투먼이 유일하나 나머지 6개 지역도 경제개발구에서 북한 노동자를 고용한다. 한국인이 중국인 ‘바지 사장’을 내세워 운영하는 공장도 있다. 조선공업원 공장주들은 올 연말이 걱정이다. 유엔 제재에 따라 노동자들을 북한으로 돌려보내야 하기 때문이다. 

중국 당국은 북한 노동자에게 3년 기한 취업비자를 더는 발급해주지 않는다. 북한 노동자들은 1개월 비자로 공장에서 일한 후 북한에 되돌아갔다가 다시 나오는 방식으로 일한다. 북한 노동자의 월 급여는 1800위안(31만 원)이다. 급여의 25%를 북한 당국에 세금 형식으로 납부한다. 

북한은 해외 송출 노동자 10만 명을 통해 연간 5억 달러가 넘는 달러를 확보해온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공업원의 북한 노동자 수는 제재 이전 3000명 수준에서 1500명으로 줄었다. 중국과 러시아가 노동자 송출에 대한 제재를 최대 강도로 수행하면 북한 경제는 적지 않은 타격을 입는다. 

북한 대외경제성 간부들은 중국인 기업가를 상대로 북한과 중국에서 투자설명회를 개최하고 있다. 평양으로서는 원산갈마해안관광지구 투자 유치가 특히 시급하다. “재재가 이뤄지고 있으나 지금이 투자 적기”라고 홍보하면서 투자를 타진하지만 성과는 거의 없는 것으로 전해진다.

인도-파키스탄 모델

김정은 국무위원장 집권 이후 북한이 일관되게 경제 개혁·개방 쪽으로 움직이면서 북한 경제의 시장·무역 의존도가 심화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서두를 필요가 없다”고 강조하면서 제재를 지렛대로 북한의 후퇴를 압박하고 있다. 중국은 북한에 불안정 기미가 보이면 제재를 완화할 공산이 크다. 

중국을 거점으로 북한 내 반(反)체제 조직 ‘횃불’을 조직하다가 2012년 중국 공안에 체포된 적이 있는 김영환 ‘준비하는 미래’ 대표는 “모든 핵을 포기할 생각이 없는 북한이 제재로 인해 미국에 굴복할 것 같지는 않다”면서 “힘들더라도 핵을 쥔 채로 버티면서 목표를 달성하려고 할 것”이라고 봤다. 

미국과 달리 중국은 북한을 굴복시킬 수단을 가졌다. △북한에 제공하는 원유 파이프라인 영구 폐쇄 △북·중 우호협력 및 상호원조 조약(북·중동맹 조약) 폐기 △탈북민 한국 이주 무제한 허용이 그것이다. 중국은 이 같은 수단을 사용할 생각이 없다. 

북·중동맹 조약 체결 58주년인 7월 11일 런민(人民)일보는 “조약의 원칙과 정신에 따라 북·중 양국이 서로 지지하고 밀접하게 협력해왔다”고 논평했다. 이 조약은 ‘체약 일방이 어떠한 1개 국가 또는 수개 국가의 연합으로부터 무력 침공을 당함으로써 전쟁 상태에 처하는 경우, 체약 상대국은 모든 힘을 다해 지체 없이 군사적 및 기타 원조를 제공한다’는 내용의 ‘전쟁자동개입조항’을 담고 있다. 북한 노동신문은 같은 날 “세월은 흐르고 많은 것이 변했지만 조·중 두 나라 인민의 운명이 서로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는 진리는 변함이 없다”고 화답했다. 

북한은 일정 수준의 비핵화를 받아들이면서 묵시적으로 핵 보유를 인정받는 한편, 미국과 관계 개선을 통해 제재와 고립을 종식하려고 한다(이른바 ‘인도-파키스탄 모델’). 한국이 ‘쌀’ 주고 ‘뺨’ 맞는 사이 북한은 자력갱생을 강조하며 목표를 향해 간고분투(艱苦奮鬪)하며 걸어가고 있다.

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이 기사는 신동아 8월호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