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전 323년 6월 11일, 알렉산드로스 대왕은 30대 초반의 나이로 숨을 거뒀다.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 중 하나인 바빌로니아, 그가 멸망시킨 페르시아 제국의 궁전에서였다. 그날 궁정에 있던 페르시아 사관은 점토판에 담담하게 “왕이 죽었다. 날씨 흐림”이라고 적었다. 그 점토판은 대영박물관에 전시돼 있다.
알렉산드로스의 이상은 하나의 세계였다. 말은 멋있지만, 전투와 학살로 이룬 제국이었다. 물론 알렉산드로스가 없었다고 해서 전쟁이 없는 고요한 세상은 아니었을 것이다. 알렉산드로스 자신은 강력한 권력에 통합된 세상이 합리와 평화, 번영이 지배하는 이상적인 사회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죽기 직전 알렉산드로스는 자신의 세계화 계획에 시동을 걸었다. 군 내부를 강하게 지배하는 마케도니아 중심주의를 해체했다. 마케도니아군의 영광이자 상징과도 같던 장창부대와 은방패 부대로 불리던 히파스피스트의 고참병들을 제대시키고, 아시아인 신병들을 충원했다. 페르시아 황제의 복장을 하고 황제의 의례를 행하며 자신의 부하 장군들을 페르시아 귀족들과 결혼시켰고, 자신은 이집트의 신 아몬의 자식이라고 주장했다.
이런 충격적인 조치에 대해 혈통주의적, 감정적, 이기주의적 반발이 동시에 발생했다. 그는 그것과 맞서 싸울 용기와 배짱이 충분했지만 운명이 용납하지 않았다. 독살설도 꾸준히 떠돈다. 마지막에 그는 자신을 이집트 방식으로 방부처리해서 이집트의 아몬신전 곁에 묻어달라고 유언했다. 세계인을 향한 마지막 시도이자 유일하게 성공한 시도였다.
알렉산드로스가 좀 더 오래 살았더라면 꿈은 이루어졌을까? 아니라고 생각한다. 법이든 칼이든 강제로 세상을 개조할 수는 없다. 훗날 로마가 제국을 이룬 것은 법과 군화 밑에 정신과 문화가 내재해 있었기 때문이다.
임용한 역사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