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 DB
경기 수원에 사는 직장인 유남석 씨(33·가명)는 사흘마다 퇴근하면 회사 근처 고깃집으로 ‘출근’한다. 저녁 끼니도 거르고 손님 맞을 준비를 하는 유 씨는 이 고깃집 사장이다. 그는 올해 5월 직장 동료 2명과 함께 4000만 원씩 모아 가게를 차렸다. 유 씨는 “요즘은 평생 직장이 없지 않냐”며 “만일을 대비해 새 일거리를 찾다가 비슷한 고민을 가진 동료들과 동업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불안한 미래를 대비하려고 자기 계발이나 부업을 하던 직장인들이 요즘엔 창업 전선에 직접 뛰어들고 있다. 지난해 7월 시행된 주 52시간제로 퇴근 후 여유 시간이 늘어난 덕분에 낮에는 직장인, 밤엔 사업가로 사는 ‘이중생활’이 가능해졌다. 창업 업종은 대개 특별한 기술이 없이 소자본으로 할 수 있는 식당이나 술집이다. 지난해 숙박 및 음식점업을 창업한 20, 30대 비중은 지난해 3분기(7~9월) 38.8%로 중소벤처기업부가 해당 통계를 집계한 2016년 이래 가장 높았다.
유 씨는 주 52시간제 전에는 ‘나인투식스’(오전 9시~오후 6시) 근무를 했지만 지금은 출퇴근 시간이 자유롭다. 그는 개점 초기 몸무게가 4kg 정도 빠지고, 회사에서 졸다가 상사로부터 ‘술 좀 그만 먹으라’는 핀잔을 듣기도 했다. 하지만 “지난달 첫 정산 결과 세 명이 200만 원씩 가져갔다”며 “부수입을 올리고 미리 직장 밖 사회 경험을 쌓을 수 있어 일석이조”라고 만족했다.
대기업 6년차 직장인 김모 씨(32)는 새로운 인맥과 경험을 쌓고자 3년 전 지인 9명과 함께 음식점을 차렸다. 김 씨는 “신입사원 때에는 주말에 회사 업무를 공부하며 회사에서 인정받으려 노력했지만 이제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얻는 행복감이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수익 자체보다는 개인의 만족을 중시하는 ‘가심비’ 트렌드가 창업에서도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젊은 직장인 사업가들은 공통적으로 상권을 직접 분석하고, 메뉴를 짜고, 직원을 뽑고 관리해본 경험들이 장차 인생의 자산이 될 것이라고 여겼다. 생계형이 대다수인 기존 음식점과 달리 미래에 대한 장기적인 투자로 창업을 택한 것이다. 유 씨는 “망하더라도 권리금과 보증금을 빼면 한 사람당 1000만 원씩 손해를 보는 건데, 인생 수업료로 생각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구인구직 플랫폼 ‘사람인’이 이달 초 직장인 1118명과 구직자 1698명을 설문한 결과 ‘창업하고 싶다’고 답한 직장인 비율은 48.2%로 구직자(33.6%)보다 높았다. 직장인 약 절반이 기회가 주어진다면 창업을 하려는 잠재적인 창업자인 셈이다. 김진수 중앙대 산업창업경영대학원 교수는 “이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과 주 52시간제 도입으로 퇴근 후 시간이 늘어난 영향으로 보인다”며 “‘레드오션’인데다 불경기로 폐업이 속출하는 요식업 창업은 신중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호경 기자 kimh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