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경임 논설위원
지난해 8월 국민연금 제도발전위원회는 국민연금이 현행대로 운영되면 2057년 고갈될 것이라는 재정추계 결과를 발표하고, 매달 내는 보험료율을 최소 3∼4%포인트 이상 올리는 2개 방안을 제안했다. 보건복지부가 이를 두고 여론 수렴에 나섰지만 5년마다 국민연금 재정추계를 하는지도 모르던 국민들에게는 난데없이 지갑 터는 소리로 들릴 수밖에.
‘더 받고 싶지만 더 내긴 싫다’는 국민들의 마음을 읽고 달랜 것이 문재인 대통령이다. 3개월 뒤 복지부의 연금 개혁안 초안을 보고받은 문 대통령은 “보험료 인상(폭)이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는다”며 재검토를 지시했다. 연금 개혁안의 비극적인 결말이 예고된 순간이었다. 도저히 ‘더 받고 덜 내는’ 마법을 부릴 수 없었던 복지부는 지난해 12월 현행 제도대로 유지하는 방안을 포함한 4개 방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정부→국회→경사노위가 서로 폭탄을 돌리는 사이 4월 경사노위 내 국민연금 특위는 활동이 종료됐다. 국민연금 개혁안이 그렇게 실종되나 싶었는데 정부가 불씨를 다시 피우는 모양이다. 박능후 복지부 장관은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8월 말까지 경사노위에서 최종 결론을 내주기를 바란다고 요청했고 그 논의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9월 정기국회에서 국민연금 개혁안 논의의 물꼬를 트기 위해 복지부가 물밑으로 움직인다는 것이다.
박 장관은 국민연금이 처음 시행된 1988년,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전신인 한국인구보건연구원 내 국민연금 연구팀이 꾸려질 당시 연구자로서 참여했다. 그만큼 국민연금에 대한 소신이 뚜렷하고, 올해 초 “국민연금법을 처리해야 하지 않냐”고 청와대에 얘기했다가 퇴짜를 맞았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그럼에도 주무 부처 장관이 개각 교체 명단에 이름이 오르내리고 나서야 뒤늦게 움직인다는 비판을 피할 순 없을 것 같다. 국민연금 제도 설계에 참여했던 박남훈 전 대통령정책비서관은 ‘보험료 인상이 정치적 문제가 됐다’는 질문을 받고 “정치인은 그렇다고 할지라도 전문가들이 그렇게 말하는 건 양심불량”이라고 일침을 놓았다(‘한국의 사회보험, 그 험난한 역정’). 장관을 비롯한 정부 내 전문가들이 침묵했던 지난 1년 동안 국민연금 개혁안은 표류했고, 다음 세대의 부담은 또 늘어났다. 변명의 여지가 없다.
우경임 논설위원 woohah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