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튜브’(지식+유튜브) 시대 활짝
17일 서울 강남구 영동대로 구글스타트업 캠퍼스에서 열린 ‘유튜브 크리에이터와의 대화’에 참석한 박일환 변호사, ‘닥터프렌즈’ 우창윤·오진승 전문의, ‘과학쿠키’ 이효종 씨, ‘댈님’ 김지아 씨.(왼쪽부터) 구글코리아 제공
#2 이화외고 3학년 박재희 양은 유튜브로 공부한다. 모의고사를 치르는 즉시 학교, 학원 교사들이 문항풀이 동영상을 올린다. 박 양은 “최근 ‘제주4·3사건’에 대한 발표도 유튜브로 준비했다. 일목요연하게 핵심만 알려줘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30여 년 전, 궁금한 게 생기면 선생님에게 묻거나 책을 뒤졌다. 10여 년 전부터는 온라인 검색 포털에 질문을 띄웠다. 지금은 유튜브가 이 역할을 한다. 10, 20대는 물론 중장년층까지 유튜브에서 교양을 쌓고 호기심을 채울 수 있어 ‘지식튜브’(지식+유튜브) 시대가 열렸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족발에서 보이는 형광색의 정체는?” “우유팩은 왜 개봉 방향이 정해져 있을까?”
‘은근한 잡다한 상식’의 한 장면. 유튜브 캡처
유튜브 측에 따르면 매일 100만여 건의 지식 동영상이 올라온다. 인문, 사회, 과학, 예술을 아우른다. 이 가운데 ‘잡학·상식’을 다루는 채널의 약진이 돋보인다. ‘사물궁이’, ‘세상의 모든 지식’(구독자 11만2900여 명), ‘은근한 잡다한 지식’(8만6000여 명)이 대표적이다. 귀여운 웹툰을 내세운 사물궁이는 가벼운 퀴즈를 푸는 느낌을 준다. ‘세상의…’는 브랜드 백과사전, 도서 백과사전처럼 지적 영감을 자극할 만한 콘텐츠를 다룬다. ‘은근…’은 상처 치료용 연고 후시딘과 마데카솔의 차이를 알려주는 과학상식 채널에 가깝다.
역사 채널도 인기가 높다. 연대기로 역사를 다루는 교과서와 달리, 특정 일화를 짤막한 콩트처럼 재구성한다. ‘써에이스쇼’(15만9000여 명)는 화면에 옮긴 역사 만화 ‘먼나라 이웃나라’ 같다. 임진왜란, 삼국지, 전국시대 등을 다루는데 드라마처럼 흥미가 최고조일 때 영상이 끝난다.
‘디바제시카’가 운영하는 채널 가운데 하나인 ‘지식정보튜브’의 썸네일. JBS E&M 제공
‘도를 아십니까’, ‘노점상 할머니 진짜 부자일까’, ‘해병대 전우회 컨테이너의 실체’ 등 한 번쯤 궁금할 법한 부분을 코믹하게 풀어낸 ‘실험카메라’ 채널도 ‘핫’하다. ‘수상한 녀석들’(99만5000여 명), ‘진용진 유튜브’(60만여 명)를 비롯해 비슷한 채널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철저한 웃음 유발용 동영상도 적지 않다. 마트에서 ‘시각장애인이 쓰는 물안경’과 ‘장까지 안 가는 유산균’을 찾는 식이다.
영화 리뷰 채널과 스포츠 채널은 경쟁이 치열하다. ‘마블세계 3대 악녀’, ‘역대 최고의 우주영화’, ‘역사상 가장 강한 수비’, ‘올해 아시아 유망주 몸값 10’이 인기 동영상에 올랐다. 틈새를 공략한 채널도 많다. 무기를 다루는 ‘건들건들’(12만9000명)과 ‘밀덕(밀리터리 덕후)영상 캐러브’(3만9000여 명), 해산물 백과사전 격인 ‘수산물을 부탁해TV’(8만4000여 명), 공룡 덕후가 만든 ‘DinoBattle TteokooTV’(6만8000여 명)가 있다.
○ 왕좌의 게임보다 재밌는 지식튜브
김도형 씨가 직접 그린 ‘별별역사’의 그래픽. 김도형 씨 제공
재미는 높은 몰입도로 이어진다. 중학생 자녀를 둔 최모 씨는 “아이들과 과학, 역사 채널을 함께 본다. 깊이 있는 사유를 방해한다는 편견이 있었는데 집중도가 높아 한 분야를 ‘워밍업’하는 데 적합하다”고 했다.
지식 탐험은 유튜브의 매력이다. 하나의 동영상을 틀면 추천 영상 20여 개가 뜬다. 포털사이트의 연관 검색어와 비슷하지만, 곧장 다른 채널로 연결된다는 점에서 훨씬 강력하다. 연출가를 꿈꾸는 대학생 김세나 씨는 “영화를 리뷰하는 채널들을 통해 정보를 얻고 감각도 키우고 있다”며 “유튜브만 부지런히 봐도 거의 모든 대화에 참여할 수 있다”고 했다.
○ “지식 검증 기능 강화해야”
대법관으로의 임기를 마치고 유튜브에서 ‘차산선생법률상식’을 운영하는 박일환 변호사. 구글코리아 제공
하지만 일부 구독자는 정보의 신뢰도에서 고개를 갸웃했다. 직장인 송모 씨는 “제대로 소화하지 못한 채로 지식을 전달한다는 인상을 받았다. 과학을 제외한 지식은 책으로 얻는다”고 했다. 직장인 임모 씨는 “육아 상식을 주로 보는데 EBS 채널에서 관련 내용을 확인한다”고 했다.
유튜브는 지식을 비전문적으로 다루는 게 필연적이라는 의견도 있다. ‘별별역사’의 운영자 김도형 씨는 “유튜브는 이야기하듯 가볍게 지식을 들려주는 플랫폼이라고 생각한다. 비전문가가 들려주는 이야기라서 더 친숙하게 느끼는 것”이라고 했다.
지식튜브는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까. 김헌식 문화평론가는 “거대 지식플랫폼으로 자리 잡은 만큼 지식을 검증하는 기능을 강화해야 한다. 특히 실험카메라 같은 채널은 인권 침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고 했다.
이설 기자 snow@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