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갈등 뿌리와 해소책은
서영아 논설위원 sya@donga.com
○ 불완전했으나 불가피했던 한일협정
먼저 한일 국교정상화 과정에서 단추가 잘못 끼워졌다는 점을 짚고 넘어가야 한다. 1961년 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 대통령은 국가 건설을 위해 자금이 필요했다. 5·16에서 한일기본협약 조인까지의 과정을 외교문서와 증언으로 엮은 ‘실록 박정희와 한일회담’(이도성 편저·1995년)에서는 당시 박 정권이 어떤 자세로 회담에 임했는지 잘 드러난다.
1962년 김종필 당시 중앙정보부장(왼쪽)과 오히라 마사요시 일본 외상의 회담 장면.
이 과정에서 식민지배의 불법성이 명시되지 않고 모호하게 처리됐다. 조약 제2조에 “1910년 8월 22일 및 그 이전에 대한제국과 일본제국 간에 체결된 모든 조약 및 협정이 ‘이미 무효임을 확인한다’”는 문안만이 실렸다. 한국 정부는 이를 1910년 강제병합 등 과거의 조약이 체결 당시부터 불법이고 무효라는 뜻으로 해석했다. 일본은 과거 조약은 합법적이고 유효했으나 1948년 한국 정부 수립으로 무효가 됐다고 주장했다.
○ “일제 불법 식민지배 피해의 위자료”
한국의 사법부 판단과 외교협정 사이에 모순이 생겼다. 일본 정부는 판결 이후 한국 정부의 입장을 계속 물었다. 우리 정부는 “삼권 분립 원칙에 따라 사법부 판결에 대해 행정부가 왈가왈부할 수 없다”며 ‘사법부 판단 존중’ 자세를 고수했다. 그러나 원고들이 위자료를 받기 위해 기업의 국내 자산에 대한 압류와 현금화 조치 등에 들어가면 일본 정부는 자국 기업이 받을 재산권 침해에 대응했다. 결국 외교 문제로 번질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흔히 한국인 징용 피해자들의 소송을 논할 때 ‘개인 청구권’이 인정되느냐 여부를 따진다. 일본 정부의 일관된 입장은 “개인 청구권은 있다. 그러나 외교적 보호권은 없다”이다. 소송할 자유는 있지만 소송에서 이겨도 그 권리를 정부가 외교적으로 보호해주지는 못한다는 것이다. 이는 사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미군 공습 피해를 입은 일본인들이 피해배상 소송을 낼 때 일본 정부가 내세워온 논리였다.
○ 한국은 1+1기금, 일본은 중재위 주장
지난 20년간 일본의 식민지배 피해와 관련된 배상 소송을 도맡다시피 해온 최봉태 대한변협 일제피해자인권특별위원장은 뜻밖에도 “외교적 협의를 통한 해결 외에 방법이 없다”며 ‘2+2’의 그림을 말했다. 한국 법원이 판결을 통한 해결만 고집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그는 “삼권 분립을 방패삼아 이 문제를 방치해온 한국 정부의 잘못이 적지 않다”며 일본이 요구하는 외교적 협의에 당당히 응할 것을 요청했다.
남기정 서울대 일본연구소 부교수는 한 걸음 나아가 한국 정부가 피해자들에게 보상해줘야 하는 이유를 특유의 논리로 주장했다. “대법원 판결은 대한민국이 1948년 신생국가로 건국됐다는 ‘단절론’이 아니라 1920년 이후 정부를 가졌고 조선인들은 대한민국 국민이었다는 입장에 기반한다. 그렇다면 임시정부하에서 발생한 국민 손해를 배상할 책임의 일부는 우리 정부가 갖게 된다.”
이원덕 교수는 또 다른 선택지로 국제사법재판소(ICJ)를 들고 있다. 한일 양국 최고사법기관이 정반대 판결을 내렸으니 “전쟁을 하지 않는 한 평화적 해결은 제3자에게 가져가는 것”이라는 얘기다. 그는 ICJ에 갈 경우 한국 일본 모두 부분승소, 부분패소가 될 가능성이 커 재판 과정에서 타협이 이뤄질 가능성도 작지 않다고 본다.
강제징용 문제를 다룬 영화 '군함도'의 한장면.
국제적 강행규범은 노예제 금지, 고문 금지처럼 모든 나라를 구속하는 국제법상 최상위 규범을 말한다. 그는 나아가 현재 ICJ 판사들의 판결 성향이나 인적 구성을 볼 때도 한국에 불리하지 않은 싸움이라고 강조했다.
ICJ는 지금까지 상당수 외교전문가가 기피해온 선택지다. 무엇보다 ‘패소 리스크’ 탓이 크다. 큰 소송에서 혹시라도 패소하면 국내로 돌아와 입게 될 후폭풍이 엄청나다는 것이다. 이는 독도 영유권에 대한 분쟁이 커질 경우에 대한 우려로 이어진다. 한번 ICJ로 가게 되면 일본 측이 독도 문제를 놓고 ICJ로 가자는 카드를 들고 나올 경우 피하기 어렵지 않으냐는 얘기다. 그러나 ICJ는 양국이 재판에 응하겠다고 해야 재판이 시작된다. 사안에 따라 응하느냐 마느냐는 우리가 정할 수 있다.
중재위나 ICJ를 옹호하는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시간 벌기’를 의식하는 입장도 적지 않다. 지금의 한일 간 정면충돌을 불사하는 대립을 멈추고 냉각기를 가진 뒤 화해의 길을 찾자는 의도가 깔려 있다. 한일 간의 1965년 체제가 한계에 이르렀다는 주장도 등장한다. 한일 관계는 제대로 된 과거사 정리, 화해 없이 출발했고 냉전구조 아래 안보와 경제 두 측면에서 묶여 있었으나 더 이상 이 같은 구조가 유지되기 어려워졌다는 것이다. 우린 어디까지 준비가 돼 있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