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고 나면 모든 게 낯선 하이테크 시대 끊임없이 새로 배워야 하는 일의 연속 반도체 산업은 우리 경제의 희망… 아슬아슬한 공생 관계로 앞날이 더 걱정 미래에도 자아성찰은 여전한 삶의 보루
전경린 소설가
‘당혹스럽다’는, 사전적으로는 정신이 헷갈리고 생각이 막혀 어찌할 바를 모른다는 의미이고 이 책에서는,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이해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자고 나면 새롭고 낯선 것이 일상인 하이테크놀로지 시대에 50대 후반의 ‘기계치’로 산다는 것은, 매일 크고 작은 당혹감을 겪는 일이다. 편리해진 만큼 끊임없이 새로 배워야 하는 일의 연속이다. 모바일 쿠폰을 적용해 셀프 주유를 하는 일이 이제 겨우 익숙해졌고 햄버거 매장의 컴퓨터 화면 앞에서 덜 허둥거리며 주문을 마치고, 앱 카드와 카카오머니가 든 스마트폰만 들고 반신반의하며 외출을 한다. 최근엔 해외 사이트에서 직구를 하는 용기도 내보았지만, 반품을 하고 나니 온라인으로 부가가치세 돌려받는 일이 오늘의 난제다. 비대면 서비스가 빠르게 확산되고, 실제적인 거의 모든 일이 스마트폰과 컴퓨터 세계 안으로 들어갔다. 이제 오프라인 세계는 껍데기만 남은 느낌이다. 체면 구길 바에야 차라리 새로운 일은 아무것도 하지 말아버릴까, 하는 생각까지 든다. 너무 복잡하고 기계적인 세상에서 지금 나이 먹은 사람인 것이 차라리 다행이라고 말한 동료도 있었다.
이쯤에서 옛날 사람들은 흔히 말세라고 했을 것이다. 그에 비하면 당혹스럽다는 말은 유발 하라리의 표현대로 겸손하다. 좌절하고 불평하고 화도 내지만, 결국은 호흡을 가다듬고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내야 하는 것이다. 최근 일본의 폭력적인 수출 규제로 인한 일련의 사태 속에서 우리 정부와 기업과 국민은 치열하게 대응하고 있다. 자유무역의 속내를 몰랐던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수출 비중이 가장 높은 대표 산업이고 우리 경제의 희망이며, 30년 역사를 가진 반도체 산업이 주요 품목을 일본에 거의 전적으로 의존해왔다는 점은 한편 당혹스럽기도 하다. 일본과 전방위적인 분쟁과 갈등을 항시적으로 겪으면서도 국제적 분업이라는 공생 관계를 해온 모양새가 아슬아슬해 지금뿐 아니라 앞날이 더 걱정되기도 한다.
자유의 위협은 일상에서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민주화를 실현했고 인권과 평등한 복지의 수준을 높이려고 노력하며 평화와 자유를 지향하고 있지만, 그 길 위에서 고도산업사회의 빛과 그늘인 감시 카메라와 빅데이터 알고리즘과 인공지능과 생명기술에 갇히는 중이다.
유발 하라리는 앞으로의 10년은 치열한 자아성찰과 새로운 사회 정치 모델 구상이 요청되는 시기라고 본다. 단일 네트워크로 통합되는 신(新)통제사회와 조화하기 위해 삶은 무엇이고,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을 원하는가, 라는 개인적 질문이 다급해진 것이다. 자신이 하지 않으면 빅데이터 알고리즘이 할 것이다. 자아성찰이 개인적 삶의 보루가 되는 것은 과거나 현재나 미래나 변함없는 모양이다.
전경린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