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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중권[횡설수설/김광현]

입력 | 2019-07-25 03:00:00


한강 주변 아파트에서 같은 동, 같은 층, 같은 평수라도 강이 보이느냐 안 보이느냐에 따라 시세가 몇 억씩 차이가 난다. 거실에서 보이느냐, 주방에서 보이느냐에 따라 또 차이가 난다. 123층 국내 최고층인 롯데월드타워 주변의 아파트도 한강만큼은 아니지만 상당한 빌딩 조망 프리미엄이 붙어 거래된다고 한다.

▷미국의 자존심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에 대한 조망 가치는 얼마나 될까. 뉴욕의 개발업체가 맨해튼의 한 낡은 건물을 허물고 그 자리에 44층짜리 빌딩을 올리려고 했다. 그러자 그 낡은 건물을 둘러싸고 있는 12층짜리 고급 주택의 입주민들이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에 대한 조망을 잃지 않기 위해 개발업체에 1100만 달러(약 130억 원)를 지불하고 공중권(Air Rights)을 사들였다고 한다. 간단하게 말하면 공중권은 용적률이다. 예를 들어 20층까지 지을 수 있는 지역에 10층짜리 건물이 있다면 남은 10층만큼의 용적률을 이웃 20층 건물주가 살 수 있다. 이를 이용해 자기 건물을 30층까지 올리거나 아니면 앞 건물이 더 올라가지 못하게 해 조망권을 확보할 수도 있다. 뉴욕 소호의 트럼프 호텔이 주변 낮은 건물의 공중권을 사들여 도심 조망권을 확보한 것도 그런 사례다.

▷서구 국가에서 공중권은 민간끼리도 활발히 거래되지만 지방정부가 도심 개발과 역사적 가치가 높은 건물을 보전하기 위해 활용하는 경우도 많다. 뉴욕시는 뉴욕 그랜드센트럴터미널 빌딩과 천장벽화를 보전하기 위해 1954년 이 건물에 50층의 공중권을 책정했다. 팬암이 이를 사들여 터미널 옆에 지금의 메트라이프 본사로 사용되는 59층짜리 빌딩을 올렸다. 일본 역시 도쿄 기차역사의 용적률을 주변 고층 빌딩들에 팔아 개조 비용을 조달한 적이 있다. 빌딩 건물주는 비좁은 도심에서 추가 공간을 확보해서 좋고, 지방정부는 도심 개발에 필요한 막대한 비용을 조달할 수 있는 이점이 있다.

▷우리나라의 조망권, 일조권은 침해당하지 않을 권리 혹은 침해당했을 때 보상받을 수 있는 권리다. 건물과 분리해 용적률만 따로 떼서 팔 수는 없다. 다만 서울시가 2007년 성북 지역의 성곽 보전을 위해 공중권과 유사한 아이디어를 낸 적이 있다. 성북지역 용적률의 일부를 3km 떨어진 월곡 개발지역에 넘겨주고 여기에서 생긴 개발이익의 일부를 성북 지역이 다시 돌려받는 2개 지역 결합 개발 방식을 취한 것이다. 서울 한복판에는 어떻게 이런 건물들이 아직 보존돼 있을까 싶은 곳들이 많다. 우리도 공중권 개념을 적극 활용해보면 어떨까 싶다.

김광현 논설위원 kk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