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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부 흡연땐 자녀 ADHD 발병 1.5배

입력 | 2019-07-25 03:00:00

[담배 이제는 OUT!]청소년 정신건강에 미치는 영향




세종시에 사는 중학생 한모 군(15)은 7세 때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 판정을 받았다. 부모님이나 선생님 얘기에 집중하지 못했고 학교생활 적응도 힘들었다. 증상이 악화된 건 9세 때 담배를 피우기 시작한 뒤부터다. 한 군의 아버지는 아들 곁에서 아랑곳하지 않고 담배를 피웠다. 호기심에 아버지 담배 한 개비를 훔쳐 피운 게 발단이었다. 중학교 입학 무렵에는 하루 두 갑을 피우는 골초가 됐다. 한 군은 “수업시간마다 담배가 피우고 싶어 두세 번씩 화장실을 들락날락거렸다”고 했다.

한 군은 지난달부터 국립중앙청소년 디딤센터에서 금연 치료를 받고 있다. 한 군을 비롯해 디딤센터에서 치료를 받는 청소년 60명 중 12명(20%)이 ADHD로 진료를 받은 적이 있다. 최경찬 치료1팀장은 “조기 흡연으로 뇌의 전두엽 기능이 약화된 아이들은 더 큰 자극을 좇아 위험하거나 잔인한 행동을 할 위험성도 크다”고 말했다.

담배가 인체에 얼마나 유해한지 따질 때 대개 폐나 심혈관 질환을 떠올리기 쉽다. 하지만 간과하기 쉬운 것이 정신건강이다. 최근 의학계에서는 청소년 ADHD 발병이 증가하는 원인의 하나로 담배를 꼽는다. 청소년 자신의 흡연뿐 아니라 임신부의 흡연이나 영·유아기 간접흡연까지 뇌 건강을 해친다는 게 정설이다.

임신부의 몸속으로 들어온 담배 유해 성분은 태아의 뇌 건강과 직결된다. 미국 소아과학회에 따르면 임신 중 담배를 피운 여성의 자녀가 ADHD에 걸릴 확률은 비흡연 여성보다 1.54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하루 10개비 이상 피웠을 때는 1.75배로 높았다. 이는 1998∼2017년 전 세계에서 진행된 임신부 흡연과 자녀 ADHD 발병 관련 연구 20건을 분석한 결과다. 이 20건의 연구가 추적, 관찰한 자녀수는 약 122만 명이다.

어린 자녀 앞에서 무심코 피운 담배는 자녀의 뇌 발달을 막는 독이 된다. 미국 마이애미대 연구팀이 4∼12세 2357명을 조사한 결과 간접흡연에 하루 1시간 미만 노출됐을 경우 노출되지 않은 경우보다 ADHD에 걸릴 확률이 2.18배 높았다. 담배 연기에 1시간 이상 노출되면 발병률은 2.73배로 더 높아졌다.

어릴 때 담배 연기에 노출된 아이는 상대적으로 일찍 흡연을 시작할 확률이 높다. 뇌 발달이 끝나는 약 20세가 되기 전에 피우는 담배는 전두엽 성장을 가로막는다. 담배 연기 속 니코틴은 약 25%가 혈액에 흡수돼 15초 만에 뇌에 전달된다. 이때 뇌에서 신경전달물질인 도파민 분비가 많아지면서 같은 자극을 계속 원하는 중독에 이르게 된다. 노성원 한양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일찍 담배를 시작할수록 끊기도 어렵다”며 “성인이 돼 충동조절 장애를 겪거나 대뇌 피질이 얇아져 치매를 유발할 수 있다”고 말했다.

담배를 피우면 스트레스가 해소된다고 느끼는 것도 뇌의 착각이다. 실제로는 ‘행복호르몬’이라고 부르는 세로토닌의 분비를 줄여 우울감을 불러오기 쉽다. 보건복지부의 ‘2016년 청소년건강행태 온라인조사’에 따르면 흡연 청소년의 20%가 ‘자살을 생각한 적 있다’고 답했다. 특히 하루 20개비 이상 피우는 청소년 사이에서는 이 비율이 37%까지 올랐다. 비흡연자(11.3%)의 3배가 넘는 수준이다.

하지만 담배회사는 청소년을 주요 타깃으로 삼는다. 담배회사의 수익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매년 사망하는 흡연자만큼 새로운 고객을 확보해야 한다. 2015년 7.8%였던 우리나라 청소년 흡연율은 이듬해 6.3%로 떨어졌지만 지난해 다시 6.7%로 올랐다. 이성규 국가금연지원센터장은 “담배회사들은 각종 맛과 향을 첨가한 가향 담배나 화려한 담뱃갑으로 청소년을 유혹하고 있다”며 “청소년의 호기심을 차단할 수 있는 강력한 판촉 규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성민 기자 m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