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O리그에서 과연 ‘리빌딩’은 현실적으로 가능할까. 눈앞의 성적, 장기적 관점에 대한 현장과 프런트의 견해 차이, 팬 여론 등 제한된 여건 속에서 여전히 리빌딩은 ‘이상’이라는 시선이 지배적이다. 사진은 지난해 잠실에서 열린 SK-두산의 한국시리즈 1차전 장면. 스포츠동아DB
“성적과 리빌딩,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겠다.”
KBO리그 감독들이 입버릇처럼 하는 이야기다. 리빌딩은 선수단의 구성원, 혹은 시스템을 물갈이하는 이른바 ‘새 판짜기’를 의미한다. 적잖은 시행착오가 필요한 과정이지만 KBO리그에서는 눈앞의 성적과 리빌딩을 함께 논한다. 리빌딩은 마치 ‘이상(理想)’이 됐다.
올스타 브레이크를 마치고 26일 후반기가 시작되지만 하위 4팀은 현실적으로 가을야구 도전이 쉽지 않다. 6위 KT 위즈와 7위 삼성 라이온즈는 6.5경기 차로 벌어져 있다. KT와 10위 롯데 자이언츠의 승차는 11경기다. 자연히 하위권 팀들은 올 시즌보다는 내년 이후를 그리는 리빌딩 쪽에 시선이 모아진다.
● “그래서, 한국형 리빌딩이 뭔데?”
9명의 감독(KIA 타이거즈 박흥식 감독대행 포함) 중 무려 일곱 명이 “한국에서 리빌딩은 쉽지 않다”고 입을 모았다. A감독은 “구단의 큰 그림은 프런트가 그리는 것”이라고 전제한 뒤 “솔직히 리빌딩, 리빌딩 하는데 그 개념이 뭔지도 정확히 모르겠다. 한국형 리빌딩은 아직 명확한 정의조차 없다. 우리나라에서 메이저리그(MLB)처럼 2~3년의 성적을 포기하고 ‘탱킹(유망주 수집을 위해 고의적으로 패하는 것)’하는 게 가능한가? 문화나 시스템 자체가 다르다. 인위적으로 베테랑을 배제하고 젊은 선수들만 기용하는 건 우리나라에서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B감독은 “실제로 몇 년 전 한 팀이 베테랑을 철저히 제외하고 유망주들만 기용한 적이 있다. 당시 긴 임기를 보장받았기에 가능했다. 그럼에도 성적이 나지 않자 감독이 중도에 경질됐다”며 “심지어 대부분의 감독들은 그보다 임기가 짧다. 이런데도 장기적 플랜이 필요한 리빌딩이 가능할까?”라고 씁쓸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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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BO리그의 시스템, 리빌딩을 막는다
거시적인 시스템의 문제를 꼽은 사령탑들도 있다. C감독은 “특정 팀은 선수 한 명을 ‘2년 뒤 주전 3루수’로 낙점한 뒤 1, 2군을 오가며 경험을 쌓게 한다. 현장과 프런트가 긴밀히 소통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며 “이처럼 구단 전체가 한 몸으로 호흡한다면 모를까, 대부분의 구단 사정상 쉽지 않다”고 선을 그었다. D감독도 “현장과 프런트의 시선이 MLB 몇몇 구단처럼 일치하기는 정말 힘들다. 때문에 리빌딩에 대한 견해도 엇갈릴 것”이라고 밝혔다.
E감독은 조금 더 구체적으로 ‘긴축 재정’을 원인으로 꼽았다. 그는 “모든 유망주가 ‘터진다’는 보장은 없다. 결국 구슬이 많아야 잘 꿸 수 있다. 하지만 최근 구단들이 다수의 육성선수 지명을 피한다”며 “선수단 규모가 수년 전과 비교하면 10명 가까이 줄어든 팀도 있다. 그만큼 리빌딩의 성공 가능성이 낮아진 것”이라고 얘기했다.
F감독은 “전년도까지 어떤 성적을 거뒀든 간에, 가을야구에 한 번 오른 팀은 그 다음 해에도 PS 진출을 노려야 한다. 팬들의 눈높이는 올라가면 내려오기 어렵다. 점진적인 리빌딩은 쉽지 않다. 하지만 리빌딩이라는 말 자체에는 점진적, 거시적, 장기적 등이 포함되는 것 아닌가. 결국 우리나라에서는 어렵다”고 꼬집었다. G감독도 이러한 팬 여론을 리빌딩의 어려움으로 공감했다.
물론 리빌딩이 가능하다는 견해의 지도자도 두 명 있었다. H감독은 “쉽지 않은 건 분명하다. ‘리빌딩을 하겠다’고 다 성공한다면 그게 왜 어려운 일이겠나”라고 전제했다. 이어 그는 “중심을 잡아주는 ‘축’ 선수들이 있고, 그 외 한두 포지션에 젊은 선수들을 기용한다면 리빌딩도 가능하다”며 “결국은 ‘눈’이 중요하다. 선수를 판단하고, 적재적소에 기용하는 현장의 안목이 리빌딩의 핵심”이라고 했다.
I감독의 견해도 비슷했다. 그는 “신인 유망주 중용이 리빌딩의 핵심이다. 현실적으로는 어렵다”면서도 “전 과정에서 현장 코칭스태프와 프런트의 역량이 중요하다. 기본이 되는 스카우트부터, 좋은 선수로 성장하기 위한 2군 코칭스태프의 강화, 여기에 유망주들을 잘 키우는 1군 지도자들의 역량도 함양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익래 기자 ing17@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