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반북 활동가의 옛 연인도 남파… ‘직파 간첩’ 최소 7명 더 있었다

입력 | 2019-07-26 03:00:00

‘스님 간첩’ 검거 계기로 본 2010년 이후 미공개 사건




2011년 10월 제주국제공항. C 씨(54)가 공항을 유유히 빠져나왔다. 중국에서 직항 편으로 입국하는 길이었다. C 씨는 중국 여권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북한의 대남공작 기구인 ‘정찰총국 5국’ 소속 공작원이었다. 북한의 지령을 받고 10년간 남한 침투를 준비해 온 이른바 ‘직파 간첩’이었다.

C 씨가 어렵지 않게 국내로 들어올 수 있었던 것은 중국 여권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2004년부터 7년간 중국인으로 위장해 ‘장핑(張平)’이란 이름을 쓰면서 운전면허증과 여권을 발급받았고 무역회사도 인수했다. 관광 기록 흔적을 남겨 한국 정부의 의심을 피하기 위해 중국 여권으로 태국과 제주를 여러 차례 오갔다. 남한으로 잠입한 C 씨는 서울시내 주요 다중이용시설을 촬영하는 등 5년 가까이 간첩 활동을 하다가 검거됐다.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C 씨는 2016년 8월 징역 5년에 자격정지 5년을 선고받았다.

국내에서 스님 행세를 하며 활동한 40대 남성 직파 간첩 피의자가 구속돼 조사를 받고 있다는 사실이 24일 알려졌다. 본보는 2010년 1월 이후 9년 만에 ‘직파 간첩’이 검거됐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북한이 보낸 ‘직파 간첩’으로 확인돼 2010년 1월 이후 한국 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된 피고인만 최소 7명인 것으로 확인됐다. 본보가 2010년 1월부터 올해 7월까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기소돼 재판을 받은 이들의 판결문을 확인한 결과다. 공안당국은 그간 직파 간첩을 붙잡아도 이를 공개하지 않았다. 검거 사실이 알려지는 순간 ‘이중간첩’으로 활용할 기회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직파 간첩’들은 짧게는 6개월, 길게는 10년간의 준비를 거쳐 국내에 침투했다. F 씨(43·여)는 2004년 6월 북한 정찰국 공작원이 됐다. 한 남성이 탈북 전 근무했던 군 기지에서 미용사로 근무했다는 이유에서였다. F 씨는 남한으로 가서 1996년 ‘강릉 잠수함 무장공비 침투 사건’ 당시 생포돼 전향한 한 남성의 소재를 파악하라는 지령을 받았다. 공작원이 된 F 씨는 매일 ‘거짓말탐지기 조사’를 통과하기 위한 훈련을 받았다. ‘하늘이 맑고 바다가 푸르다’는 생각을 되뇌면서 심박수를 일정하게 유지하는 훈련이었다. 국내에 입국한 탈북자들은 국가정보원과 기무사 등이 실시하는 합동신문 때 거짓말탐지기 조사를 받아야 한다.

북한 보위사령부 소속 G 씨(44·여)는 2012년 6월 국내 침투를 준비하면서 상급자로부터 특수약물을 건네받았다. 거짓말탐지기 조사를 통과할 수 있게 해주는 약물이라고 했다. 탈북 후 국내에서 반북 활동을 하고 있는 한 남성의 동태를 파악하는 게 G 씨의 임무였다. G 씨는 이 남성과 북한에서 사귄 적이 있었다.

‘직파 간첩’ 대부분은 탈북자로 위장해 국내 입국을 시도했다. 7명 중 6명이 북한에서 중국, 태국을 차례로 거쳐 한국으로 왔다. 고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를 암살하기 위해 국내에 침투하려다 적발된 정찰총국 공작원 동명관 씨(45) 등 세간에 알려진 ‘직파 간첩’들이 택했던 입국 루트다.

북한 보위부 소속 공작원 E 씨(54·여)는 2012년 태국에 도착하자마자 현지 경찰서로 가 자신이 ‘탈북자’라고 자수를 했다. 태국 방콕 이민국 감호소에 갇힌 E 씨는 현지 한국대사관에 “생활고 때문에 탈북했다”고 거짓 진술을 해 3주 만에 한국 땅을 밟았다. ‘탈북자’로 위장한 ‘직파 간첩’ 6명은 공안당국의 합동신문에서 간첩이라는 것이 탄로가 났다.

고도예 기자 yea@donga.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