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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칸 트러커 길재 씨는 오늘도 달린다[오늘과 내일/박용]

입력 | 2019-07-27 03:00:00

기술 변화, ‘일하는 서민’ 직격탄… 적응 기회와 지원 늘려 일으켜 세워야




박용 뉴욕 특파원

‘아메리칸 트러커(트럭 운전사)’ 황길재 씨(50)는 24일 오후(현지 시간) 40t 대형 트럭을 몰고 미국 미시간주에서 오하이오주 클리블랜드로 넘어가고 있었다. 그의 ‘아메리칸 드림’은 정지된 스냅샷이 아니라 계속 시련과 응전이 이어지는 한 편의 영화 같다.

서울의 한 대학에서 연극영화를 전공한 그는 2007년 서른여덟의 나이에 미국 이민을 결심했다. 시작부터 시련이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졌고 그를 뽑아줬던 미 회사는 문을 닫았다. 타국에서, 그것도 아들과 딸, 아내까지 데리고 실직을 한 것이다. 다행히 동포 언론사에서 일자리를 얻어 금융위기의 풍파를 견뎠다.

2013년 뉴욕에서 택시 운전에 도전했다. 처음엔 벌이가 나쁘지 않았다. 위기가 또 닥쳤다. 승차 공유 회사인 우버가 급성장하면서 벌이가 고꾸라졌다. 집으로 가져가는 돈이 1주일에 700달러(약 82만 원) 남짓으로 줄었다. 물가 비싼 뉴욕에서 월세 1500달러를 내고 4인 가족이 살기에는 빠듯한 돈이다. 그는 “손님들이 편리하고 차량도 깨끗한 우버를 선택하는 데 버틸 재간이 없었다”고 말했다.

그의 친구도 서울에서 개인택시를 몬다. 그는 “친구도 힘들다고 했다. 택시 기사 잘살자고 기술 진보를 막을 수 없다는 것도 안다고 했다. 승객들이 택시를 좋아하지 않는 게 더 힘들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 초 뉴욕 택시를 그만뒀다. 이참에 광대한 아메리칸 대륙을 누비는 ‘트러커’에 도전해 보고 싶었다. 마침 4000달러(약 472만 원)가 넘는 트럭 운전사 교육 훈련을 무료로 해준다는 회사를 만났다. 미국은 실업률이 반세기 만에 가장 낮아 트럭 운전사 구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그는 선배 트러커와 한 조가 돼 석 달간 4만 마일(약 6만4374km)을 달리며 트럭 운전면허를 따고 운전 실무를 배웠다. 요즘은 트럭에서 잠을 자며 하루 400∼500마일을 달린다. 4주 이상 나갔다가 집에 돌아와 4일 정도를 쉬고 다시 달린다. 가족, 친구들과 떨어져 지내는 건 힘들지만, 수입은 갑절 가까이로 늘었다.

‘아메리칸 트러커’의 삶에도 위기가 닥칠 거라는 걸 잘 안다. 동료 운전사들은 미중 무역전쟁으로 화물 주문량이 작년만 못하다고 투덜거린다. 우버가 트럭 서비스 시장에 진출한다느니, 자율주행 트럭이 도로에 나올 것이라느니 하는 말도 들린다. 길재 씨는 “모두가 겪을 일자리 변화를 우리가 먼저 겪는 것일 뿐”이라며 “고교생 아들과 딸이 취업할 때면 시장은 더 빨리 바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미국에서 가장 힘든 사람들은 나처럼 연 4만∼5만 달러 버는, ‘일하는 서민’일 것”이라고 말했다. 저소득층은 국가에서 생활비나 의료비 등을 지원해 주지만 부자도 빈자도 아닌 어정쩡한 중산층은 스스로 벌어서 감당해야 한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핵심 지지층도 저소득층 편중 정책에 분노한 ‘잊혀진 중산층’이다. 그는 “그래도 그러면 안 된다. 우리도 언젠가 빈곤층으로 떨어질 수 있지 않느냐”며 고개를 저었다.

길재 씨는 언젠가 영화감독으로 ‘입봉’하는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 미국 트럭 운전사의 삶 자체를 다룬 영화를 찍어볼 계획이다.

“사이버 시대엔 ‘아메리칸 드림’이라는 지리적 한계는 없다고 봅니다. 케이팝 그룹 BTS도 처음엔 인터넷과 소셜미디어로 미국에서 유명해졌잖아요. 요즘 디지털 장비가 좋아져 큰돈 안 들이고 영화를 만들 수 있어요.”

길재 씨의 ‘로드 무비’는 앞으로도 멈추지 않을 것이다. ‘일하는 서민들’이 미래에도 계속 달릴 수 있게 끌어주고 밀어주는 것은 국가와 사회, 정치의 책임이다.

박용 뉴욕 특파원 park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