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중국이 시장 개방 의무를 회피하는 데 이용한 개발도상국(개도국) 지위 규정을 90일 내로 개정하도록 세계무역기구(WTO)에 사실상 ‘최후통첩’을 했다. 이는 미·중 무역협상을 앞두고 중국을 겨냥한 조치이지만 이 과정에서 한국도 개도국 지위를 주장하는 부자 나라 중 하나로 거론해 향후 파장이 예상된다.
● “WTO 시스템 망가져” 개혁 지시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USTR에 WTO 개도국 지위 규정의 개혁을 지시하는 내용의 문서에 서명했다. 그는 이 문서에서 “WTO는 일부 회원국들이 국제 무역에서 불공정한 이익을 얻게 하는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의 낡은 이분법에 계속 의존하고 있다”며 “USTR은 WTO 규정 및 협상에서 유연성을 얻기 위해 개도국으로 선언하는 것을 막기 위해 모든 가용한 수단을 사용할 것”이라고 밝혔다.
● “90일 내에 개혁 없으면 미국 일방 조치”
트럼프 대통령은 WTO가 90일 내에 이 개도국 지위 규정을 바꾸지 않으면 미국이 일방적으로 일부 국가에 대한 개도국 지위 인정을 철회하겠다고 위협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문서에서 “USTR이 90일 내로 이런 변화를 달성하기 위한 근본적인 진전이 이뤄지지 않았다고 판단한다면 USTR은 부적절하게 개도국으로 선언한 WTO 회원국을 더는 개도국으로 대우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WTO에 올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이거나 주요 20개국(G20) 회원국인 국가, 세계은행이 고소득 국가로 분류하거나 세계 상품 교역의 0.5% 이상을 차지하는 국가를 개도국에서 제외할 것을 요구했다.
● 미중 무역협상 앞두고 중국 압박
전문가들은 이번 조치가 중국을 압박하고 WTO 개혁을 강조하기 위한 목적이라고 해석하고 있지만 한국 등 중국 이외 국가의 개도국 지위까지 문제 삼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서한에서 “브루나이 홍콩 쿠웨이트 마카오 카타르 싱가포르 아랍에미리트 등 구매력 기준 1인당 국내총생산 기준 세계 10대 부자 나라 중 7개국이 개도국 지위를 주장하고 있다. 멕시코 한국 터키 등 G20 회원국이자 OECD 회원국인 나라들도 이 지위를 주장한다”고 언급했다.
● 한국 개도국 지위, 일본 수출규제 여론전에 불똥
WTO 분쟁 조정 절차의 무력화는 일본의 대(對) 한국 수출규제 조치를 비판하며 국제 여론전을 펼치고 있는 한국에도 불리하게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WTO 상소기구의 재판관에 대한 임명을 거부하고 있다. 올해 연말 WTO 재판관 두 명의 임기가 끝나면 상소기구 재판관은 1명만 남게 돼 정족수를 채우지 못한다. WTO 분쟁 조정 기능이 사실상 무력화될 수밖에 없다.
뉴욕=박용 특파원park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