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현지시간) 오후 베지 카이드 에셉시 튀니지 대통령이 92세로 사망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이집트 수도 카이로의 외신기자클럽 인근 식당에서는 인터넷 뉴스를 통해 속보를 확인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외신기자클럽의 한 직원은 기자에게 “카이로에 오자마자 큰 일이 터진 것 같다. 튀니지 출장을 갈 예정이냐”고 물었다.
에셉시 대통령은 아랍권에서 나름 상징적인 인물로 여겨진다. 중동 민주화 운동 ‘아랍의 봄’의 발원지(2010년 12월)인 튀니지에서 2014년 12월 처음으로 민주적인 선거를 통해 대통령에 당선됐기 때문이다. 튀니지는 아랍의 봄 발발 10년을 앞두고 있는 현 시점에서 혁명의 물결을 거친 나라(튀니지, 리비아, 시리아, 이집트, 예멘 등) 중 유일하게 민주주의가 작동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내전으로 나라가 엉망진창이 된 시리아 리비아 예멘, 잠시 민주화의 움직임이 있었지만 군부독재로 회귀한 이집트와는 차원이 다르다.
특히 에셉시 대통령은 집권 뒤 자신에게 적대적이었던 이슬람주의 정치세력을 포용하려 했고, 여성 인권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했다. 이를 통해 튀니지의 정치적 안정을 만들었다고 평가를 받았다. 그래서일까. 적지 않은 사람들이 튀니지를 중동 민주주의의 모델이라고 치켜세우기도 했다. 27일 진행된 에셉시 대통령의 장례식에도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펠리페 6세 스페인 국왕, 타밈 빈 하마드 알사니 카타르 국왕, 마흐무드 압바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 등이 참석했다.
실제로 민주화된 튀니지의 경제 성적표는 엉망이다. 공식적인 국가 실업률이 약 15%다. 국제 노동기구(ILO)에 따르면 튀니지의 청년 실업률은 지난해 기준 약 35%다. 아랍의 봄이 터진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만성적인 일자리 부족을 견디지 못한 청년층의 분노였는데, 10여년이 지난 상황에서도 현실은 크게 달라지지 않은 것이다. 참고로 아랍의 봄은 튀니지에서 대학을 나왔지만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과일 행상을 하던 무함마드 부아지지(당시 26세)가 2010년 12월 경찰 단속에 리어카를 뺐기고 벌금까지 부과받자 절망을 못 이기고 분신한 게 도화선이 됐다.
걸프 지역에서 활동하는 전문직 출신의 한 튀니지인은 “아랍의 봄 이야기만 나오면 서방 언론과 학자들이 튀니지를 찬양한다. 하지만 그들이 튀니지에서 살아본 적이 있냐”며 “튀니지 경제는 과거보다 더 어렵고, 여전히 사람들은 희망을 못 찾고 있다”고 말했다. 이집트인들도 “처음에는 민주화를 이룬 튀니지가 부러웠지만 이제는 안 그렇다. 경제적으로는 우리보다 더 어려우면 어렵지 나은 것 같지는 않다”고 말했다. 올해 대규모 민주화 시위가 벌어진 알제리와 수단 출신들도 “민주화도 중요하지만 경제적으로 안정되는 게 더 중요할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에셉시 대통령의 사망은 결국 민주주의가 제대로 뿌리를 내리고, 나아가 좋은 평가를 받기 위해서는 경제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다. 가뜩이나 민주주의 경험이 부족한 중동에서 경제적 안정이 뒷받침 되지 않는 민주화는 더욱 불안정할 수밖에 없다. 에셉시 대통령의 사망으로 튀니지 정국을 우려하는 이들도 많은 수는 정치적 혼란보다 경제적 어려움을 더 우려한다.
“튀니지에서 다음 대통령은 누가 되든 부진한 경제를 어떻게 다루느냐로 가장 우선적으로 평가 받을 것이다”는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의 전망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리고 또하나 튀니지에서 당연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는 건 에셉시 대통령과 달리 ‘젊고, 건강한 대통령’이 탄생해야 한다는 점이다.
젊은 대통령이 정치적 안정 속에서 경제 성장을 이루어내는 튀니지의 모습을 과연 볼 수 있을까. 이런 모습이 현실이 된다면 튀니지를 중동 민주화의 모델로 인정하는 ‘일반인’들도 많아지지 않을까.
카이로=이세형 특파원 turtl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