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경화 외교부 장관과 고노 다로 일본 외상의 26일 통화를 계기로 꽉 막힌 한일관계에 숨통이 트이는 듯한 기류가 감지되고 있다. 두 사람은 통화에서 ‘각급 외교 채널을 통한 대화와 소통’에 공감하고 다자회의 등을 통해 의견을 교환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이번 주 태국 방콕에서 열리는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을 계기로 한일, 한미일 외교장관 회담이 성사될 가능성이 점쳐진다.
한일 갈등이 막다른 골목으로 치닫던 분위기에서 성사된 한일 외교장관의 통화는 주목할 만하다. 비록 입장 차는 여전했지만, 전날 이낙연 국무총리가 “외교적 협의를 통해 해결책을 찾자”고 촉구한 것에 일단 일본이 호응하고 나선 것으로 볼 수 있다. 특히 이번 통화가 아베 신조 총리의 의중과 상관없이 이뤄지긴 어려웠을 것인 만큼 아베 정부가 적어도 숨고르기에 나선 것 아니냐는 관측도 가능하다.
여기에는 한일 간 물밑 외교가 작용했을 가능성이 높고, 미국의 조용한 역할도 한몫했을 수 있다. 미 국무부 고위관계자는 26일 ARF에서 한미일 3국 외교장관 만남을 강하게 시사하며 “한일 양측에 이득이 되도록 장려할 방안을 찾고 있다”고 했다. 한일 갈등이 낳을 미국 경제에의 악영향, 나아가 한미일 3각 공조의 훼손 가능성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미국 정부의 중재 노력이 조금씩 가시화할 것으로 기대되는 대목이다.
일본의 수출 규제가 시행된 지 한 달이 다 되어간다. 그동안 양국에선 대화 아닌 비난, 이성 아닌 감정이 지배했다. 국민 정서에 기대는 정치적 선동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대화를 통한 외교적 해결을 촉구하는 합리적 이성의 목소리도 높아졌다. 양국 정부는 이제 막 열리려는 외교의 공간을 충분히 활용해야 한다. 일단 갈등부터 봉인해야 한다. 최소한 추가 조치나 말싸움부터 자제하면서 진지하게 근본적 해법을 찾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