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 행정가가 혁신 탄생의 밑거름… 중국도 하는데 우리라고 못 하겠나
하임숙 산업1부장
한 배터리 제조 대기업의 최고경영자(CEO)는 “중국의 기술 관료들 때문”이라고 했다. 중국의 행정구역 단위인 성의 행정을 책임지고 있는 성장들은 기계공학과 같은 공대를 나온 테크노 관료들이 많다고 했다. 공학박사들도 수두룩해 이야기를 하다 보면 기업의 CEO보다 기술에 대해 훨씬 잘 알고 있다고 한다. 이들은 외국 기업에 사업을 허가할 때 가장 중요한 길목을 ‘귀신같이’ 막아놓는다 했다.
“중국의 성장들은 행정 주사부터 시작해서 성장 자리를 차지하기까지 지속적으로 경쟁하며 살아남은 사람들입니다. 기술을 아는 데다 행정력까지 갖췄으니 천하무적인 셈이죠.”
관료들의 기술 전문성이야말로 자연자원 하나 없이 기술로, 인적자원이라는 소프트파워로 국내총생산(GDP) 기준 세계 11위가 된 우리나라에 필요한 덕목이다. 특히 자동차, 택시 같은 기존 산업에 기술이 결합해 업(業)의 의미조차 바뀌고 있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더 그렇다. 기술과 행정력을 동시에 지닌 관료가 나서서 세계적인 기술의 흐름을 감지하고, 어떤 규제를 풀어 새 시장을 열지 판단해야 할 중차대한 시기인 것이다.
이는 과학기술정책을 진두지휘하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에게만 해당하지 않는다. 기존 산업의 변신을 지휘해야 할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기술 인력을 키워내야 할 교육부 장관, 어느 곳보다 공유경제가 빨리 태동하고 있는 택시, 자동차 분야 규제를 책임지고 있는 국토교통부 장관, 사물인터넷을 활용한 스마트 농업과 스마트 수산업을 키워야 할 농림축산식품부 장관과 해양수산부 장관, 일부 국가에선 이미 현실화되고 있는 원격의료서비스 등을 키워야 할 보건복지부 장관 등 어느 한 부처 걸리지 않는 곳이 없다.
그런데 우리나라 현실은 그렇지 않다. 18개 행정부 장관 가운데 기술 쪽 경력이 있는 사람은 수학과 출신으로 LG전자 등을 거친 유영민 과기정통부 장관 한 명뿐이다. 대통령에게 조언하고 손발이 돼 움직일 비서실에 소속된 2명의 실장과 8명의 수석 중 자연계에 한 발이라도 걸친 사람은 전기공학과를 나온 강기정 정무수석 1명뿐이고, 그나마 그는 주된 경력이 정치인이다.
길게 보면 행정고시라는 관료 배출 시스템을 손보는 걸 논의해야 하겠지만, 짧게는 행정부 수장 자리에 정치인 말고, 기술에 해박한 사람을 찾아 임명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눈 씻고 보면 그런 능력자가 아예 없겠는가. 곧 개각이다.
하임숙 산업1부장 arteme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