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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에 해박한 장차관을 보고 싶다[오늘과 내일/하임숙]

입력 | 2019-07-29 03:00:00

기술 행정가가 혁신 탄생의 밑거름… 중국도 하는데 우리라고 못 하겠나




하임숙 산업1부장

우리나라 전기차 배터리 생산업체들은 2016년부터 중국 판매물량이 제로(0)다. 그때부터 중국 정부가 한국산 배터리를 탑재한 전기차에는 보조금을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2015년까지는 매년 한국 배터리 업체들이 전기차 100만 대 이상에 들어갈 물량을 수주했었다. 공식적으론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보복의 일환이라고 알려졌지만 업계가 보는 시각은 다르다.

한 배터리 제조 대기업의 최고경영자(CEO)는 “중국의 기술 관료들 때문”이라고 했다. 중국의 행정구역 단위인 성의 행정을 책임지고 있는 성장들은 기계공학과 같은 공대를 나온 테크노 관료들이 많다고 했다. 공학박사들도 수두룩해 이야기를 하다 보면 기업의 CEO보다 기술에 대해 훨씬 잘 알고 있다고 한다. 이들은 외국 기업에 사업을 허가할 때 가장 중요한 길목을 ‘귀신같이’ 막아놓는다 했다.

“중국의 성장들은 행정 주사부터 시작해서 성장 자리를 차지하기까지 지속적으로 경쟁하며 살아남은 사람들입니다. 기술을 아는 데다 행정력까지 갖췄으니 천하무적인 셈이죠.”

초창기에 중국이 한국 배터리 업체들을 허용해 준 것은 자국 전기차 산업을 발전시키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전기차가 자동차 산업의 ‘손에 잡히는’ 미래로 떠오르기 시작한 2016년 무렵엔 전기차의 핵심 분야인 배터리 산업을 키워야겠다는 생각을 했을 것이라는 게 업계의 이야기다. 실제 3년의 보조금 정책 결과 중국 CATL은 한국 기업만 생산하던 차세대 고성능 배터리를 올해부터 대량 생산하게 됐다. 그 사이 한국 배터리 기업들은 성장 속도가 늦춰졌다. 만일 중국의 보조금 정책이 없었다면 LG화학은 전체 사업에서 배터리가 차지하는 매출 비중이 50%를 넘게 되는 시기가 현재 예상되는 2022년이 아니라 바로 올해였을 거라는 게 이 회사의 설명이다.

관료들의 기술 전문성이야말로 자연자원 하나 없이 기술로, 인적자원이라는 소프트파워로 국내총생산(GDP) 기준 세계 11위가 된 우리나라에 필요한 덕목이다. 특히 자동차, 택시 같은 기존 산업에 기술이 결합해 업(業)의 의미조차 바뀌고 있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더 그렇다. 기술과 행정력을 동시에 지닌 관료가 나서서 세계적인 기술의 흐름을 감지하고, 어떤 규제를 풀어 새 시장을 열지 판단해야 할 중차대한 시기인 것이다.

이는 과학기술정책을 진두지휘하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에게만 해당하지 않는다. 기존 산업의 변신을 지휘해야 할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기술 인력을 키워내야 할 교육부 장관, 어느 곳보다 공유경제가 빨리 태동하고 있는 택시, 자동차 분야 규제를 책임지고 있는 국토교통부 장관, 사물인터넷을 활용한 스마트 농업과 스마트 수산업을 키워야 할 농림축산식품부 장관과 해양수산부 장관, 일부 국가에선 이미 현실화되고 있는 원격의료서비스 등을 키워야 할 보건복지부 장관 등 어느 한 부처 걸리지 않는 곳이 없다.

그런데 우리나라 현실은 그렇지 않다. 18개 행정부 장관 가운데 기술 쪽 경력이 있는 사람은 수학과 출신으로 LG전자 등을 거친 유영민 과기정통부 장관 한 명뿐이다. 대통령에게 조언하고 손발이 돼 움직일 비서실에 소속된 2명의 실장과 8명의 수석 중 자연계에 한 발이라도 걸친 사람은 전기공학과를 나온 강기정 정무수석 1명뿐이고, 그나마 그는 주된 경력이 정치인이다.

길게 보면 행정고시라는 관료 배출 시스템을 손보는 걸 논의해야 하겠지만, 짧게는 행정부 수장 자리에 정치인 말고, 기술에 해박한 사람을 찾아 임명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눈 씻고 보면 그런 능력자가 아예 없겠는가. 곧 개각이다.

하임숙 산업1부장 arteme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