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생산, 정부 예상보다 7만t 많아 양파 上品 1kg당 500원도 못받아 “가격 하락땐 적정가 보상수매를”… 농민, 공공수급제 도입 요구하지만 정부는 예산 너무 많이 들어 난색… 전문가 “생산자 먼저 수급 조절후 정부-지자체 보조금 지원 바람직”… 정부, 내달께 유통개선 대책 발표
주애진 경제부 기자
요즘 양파 사랑을 실천하는 건 백 씨뿐만 아니다. 인터넷에는 ‘안타까운 마음에 동네 주민들과 양파김치를 만들었다’는 주부의 경험담이나 양파 공동구매를 제안하는 글이 자주 올라온다. 인천의 한 베이킹 클래스에선 지난달 말 양파 농가를 돕자는 취지로 ‘어니언 케이크 교실’을 열었다. 기업과 지방자치단체들은 줄줄이 양파 소비 촉진 운동에 동참하고 있다. ‘양파 파동’으로까지 불리는 양파 값 폭락은 왜 일어난 것일까.
○ 유례없는 풍년의 후과
농산물값 하락에 따른 정부 대책을 촉구하는 집회가 열린 19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한 농민이 항의의 의미로 양파 자루를 바닥에 집어던지고 있다. 송은석 기자 silverstone@donga.com
양파 값 폭락은 올해 양파 작황이 지나치게 좋았기 때문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올해 양파 생산량이 159만4450t으로 작년보다 4.8% 증가했다. 최근 5년간 평균 생산량과 비교하면 22.9% 늘어난 수치다. 관련 통계 집계를 시작한 1980년 이후 가장 많다. 하지만 양파 재배면적은 2만1777ha로 작년보다 17.6% 줄었다. 지난겨울 기온이 따뜻해 양파를 키우기 좋은 기상여건이 유지되면서 단위면적당 생산량이 늘어난 영향이 컸다. 올해 재배면적 0.1ha(약 302.5평)당 양파 생산량은 7322kg으로 작년보다 27.2% 늘었다. 농촌진흥청은 “올해가 양파를 키우기에 20년 만에 가장 좋은 날씨”라고 했다.
대풍으로 양파 공급량이 급증하면서 가격은 폭락했다. 양파 값은 평년 대비 절반으로 떨어졌다. 서울시농수산식품공사에 따르면 지난달 상(上)품 기준 양파의 1kg당 도매가격은 436원이었다. 최근 5년간 6월 평균치인 789원의 약 55%에 불과하다. 농민들은 5년 전에 벌어졌던 ‘양파 파동’의 악몽을 떠올리며 애써 키운 양파밭을 스스로 갈아엎어야 했다. 양파 값이 급등했던 2013년 양파 도매가격은 1kg당 2000원대까지 올랐다가 이듬해인 2014년 여름 400원대로 폭락했다.
○ 반복되는 가격 파동
올해 기후조건이 좋아 생산량이 늘어난 건 마늘, 보리 등 다른 농산물도 마찬가지다. 올해 마늘 생산량은 작년보다 16.9% 늘어난 38만7671t이다. 2013년 41만2250t 이후 6년 만에 가장 많은 생산량이다. 보리 생산량은 20만3t으로 작년보다 32.1% 증가했다. 마늘과 보리 모두 재배면적은 줄었지만 날씨가 좋아 단위면적당 생산량이 늘었다. 이 때문에 양파만큼은 아니지만 마늘과 보리 가격도 평년에 비해 약세를 보였다.
주요 농산물의 가격 급등락이 계속 반복되는 건 기후 영향뿐만 아니라 가격 하락에도 소비는 크게 늘지 않는 ‘비탄력성’ 때문이다. 노지에서 재배하는 농작물은 기후에 따라 풍년과 흉년이 반복돼 생산량 변화폭이 크다. 하지만 양파 등의 가격이 떨어졌다고 사람들이 갑자기 해당 농작물 소비를 크게 늘리지는 않는다. 이로 인해 공급이 적정 물량보다 조금만 더 늘어도 가격이 크게 하락하는 현상이 벌어진다.
정부는 수급 예측을 통해 사전에 재배물량을 조절하려 하지만 쉽지 않다. 일단 기술적 한계로 수급을 정확하게 예측하기 어렵다. 농촌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올해 양파 생산량은 당초 전망치보다 7만8000t 많았다. 아울러 농민들에게 재배면적을 늘리거나 줄이라고 설득하기도 어렵다. 예를 들어 올해 양파 작황이 좋을 것으로 예상돼 정부가 양파농가에 재배면적을 줄이라고 권했다고 하자. 그런데 예상과 달리 작황이 나쁘면 권고를 따르지 않고 양파를 많이 재배한 농가만 이득을 보게 된다. 재배면적 감소 권고가 농민들에게 잘 먹히지 않는 이유다.
기술 발달로 단위 면적당 생산성은 향상되는데 인구구조 변화로 농산물 소비는 제자리걸음을 하거나 감소하는 추세인 점도 농산물 가격에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
○ “생산자협회가 먼저 수급조절 노력, 정부는 보조금 등 후선 지원”
농식품부는 정부가 농산물 전량을 수매해 관리하는 방식의 공공수급제는 도입할 수 없다며 난색을 표했다. 수매 과정에서 운임료, 저장비용 등이 발생해 비효율적인 데다 예산이 너무 많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최근 5년간 과잉 생산된 채소류를 산지에서 폐기하는 비용만 741억 원이 쓰였다. 이 가운데 농협과 지방자치단체 몫을 제외한 중앙정부 예산이 약 80%에 이른다. 수매는 산지 폐기보다 비용이 더 든다.
농식품부는 그 대신 사전에 농산물별 재배면적을 적절하게 관리하는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 생산량 관측 고도화, 유통구조개선 등의 내용이 담긴 채소산업 발전대책을 이르면 다음 달 말 발표할 계획이다.
전문가들은 정부의 개입 못지않게 농민들이 자발적으로 수급관리에 참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동일한 농산물을 생산하는 농가들이 생산자협회 등을 통해 자율적으로 생산량을 조절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것이다. 제주의 감귤자조금이 대표적이다. 김태균 경북대 농업경제학과 교수는 “품목별 생산자 조직이 앞장서서 수급 조절을 해주고 정부와 지자체는 보조금 등의 형식으로 지원해야 한다”고 했다.
안정적인 수급이 이뤄지도록 계약재배 비중을 늘리는 것도 방법이다. 주요 채소류는 현재 계약재배 비중이 20% 미만으로 낮은 편이다. 그 일환으로 정부가 운영 중인 채소가격안정제도를 확대하는 방안을 생각해볼 수 있다. 이 제도는 일종의 계약재배 방식으로, 농산물 가격이 떨어졌을 때 정부가 참여 농가에 평년 가격의 80%를 보장해주는 대신 공급과잉이 예상될 때 재배면적 감소 등의 의무를 지우는 것이다. 김동환 농식품신유통연구원장은 “다만 지금처럼 80%를 고정적으로 보장하지 말고 농민들의 의무 이행 여부에 따라 보장률을 조절해 탄력적으로 운영해야 한다”고 했다.
농민들이 자식처럼 키운 농산물을 스스로 폐기하는 비극을 반복하지 않으려면 정부가 수급 관측을 더 정교하게 하고 과잉 생산된 농산물을 수출 등으로 해소할 수 있게 도와야 한다. 물론 농산물 생산의 1차 책임자인 농민이 정부 탓만 하기보다 파동 재발을 막기 위한 다양한 접근을 시도해야 한다.
세종=주애진 경제부 기자 ja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