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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문집 ‘시절일기’ 펴낸 김연수 작가 “낯선 어둠 다가왔을 때 빛을 찾아준 건 글쓰기”

입력 | 2019-07-30 03:00:00


김연수 작가는 최근 인상 깊게 읽은 소설로 테드 창의 단편집 ‘숨’과 박상영 작가의 작품들을 꼽았다. 최근 자주 만나는 문인은 “‘동네 술친구’인 김훈 선배님”이라고 했다. 송은석 기자 silverstone@donga.com

마흔 즈음, 변화 없이 평온하게 흐르던 세계에 금이 갔다. 친구와 가족을 잃은 뒤의 일상은 ‘비포 앤드 애프터’처럼 낯설었다. 그들이 없는 채로 남은 날을 살아내야 하고, 앞으론 비슷한 일이 반복될 거란 사실이 가슴을 짓눌렀다. 이런 마음으로 세월호 사건까지 겪었다. 낙관이 넘치던 글에 비관의 그림자가 아른거렸다.

김연수 소설가(49)가 40대에 써내려간 글을 묶어 산문집을 냈다. 제목은 ‘시절일기’(레제·1만5000원), 부제는 ‘우리가 함께 지나온 밤’. 2003∼2017년 절규하듯 토해낸 글 가운데 일부를 거듭 고쳐서 엮었다. 26일 서울 종로구 청계천변에서 만난 그는 “지나고 보니 그 시절을 버틴 건 글쓰기 덕분이었다. 사람을 두 번 살게끔 하는 글쓰기를 통해 어둠에서 빛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고 했다.

시간 순서와 상관없이 5개 테마로 글을 묶었다. 특히 2부는 세월호 참사에 대한 글로만 구성했다. 그만큼 세월호가 안긴 타격이 컸다. “소설가는 기승전결로 세상을 바라보는데, 세월호 사건은 논리를 한참 건너뛰는 어처구니없는 비극이었다.”

“가슴이 안 뛴다고나 할까요.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희망이 무너지자 오래 무기력했습니다. 당시에 쓴 글도 못 봐줄 만큼 어둡겠거니 했는데 의외로 그렇지 않더군요. 한 줄기 빛이나마 찾으려고 노력한 덕분인 것 같습니다. 이제는 저의 렌즈를 덧씌우지 않고 있는 그대로 세상을 바라보려 합니다. 쓰는 행위를 통해 태도가 바뀐 거죠.”

젊은 세대의 필독서로 통했던 첫 산문집 ‘청춘의 문장들’(2004년) 당시에 작가의 관심사는 온통 자신이었다. 소설을 쓸 때도 딱히 바깥을 신경 쓰진 않았다.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한 건 독자가 책으로부터 받는 영향이 크다는 사실을 자각하면서부터. 그는 “주인공에게 공감하다가 독자 본인의 세계와 작품 세계를 연결짓더라. 시공간을 구체적으로 설정하는 편이라 더 깊이 연루되는 것 같다. 작품이 여러 기억이 공동으로 모였다 흩어지는 정거장 같은 곳이라는 걸 알고 나니 책임감이 생겼다”고 했다.

요즘에는 우리 사회의 속성에 관심이 간다. 과거 출구 없는 ‘헬조선’처럼 느껴진 우리 사회가 요즘엔 달리 보이기 시작했단다.

“광화문 집회를 가보니 흥미롭더군요. 개인의 가치관은 유년기의 영향을 크게 받는데, 1940년대생은 1950∼60년대, 20대는 2000년대를 겪은 거잖아요. 사회적 피가 다른 이들이 같은 사회에 공존하니 모든 이슈가 합의를 보지 못한 채 어중간하게 결론이 나는 거죠. 한 세력이 오래 통치하는 건 당연히 불가능하고요. 그만큼 사회적 비용이 높지만, 젊은 민주주의 국가의 특성으로 이해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합니다.”

그는 소설도 다작하지만 산문집도 다수 펴냈다. 초기엔 잡문을 쓴다는 생각에 창피했는데, 지금은 산문이 더 어렵고 조심스럽다. 독자와 곧장 연결되고 시공간에 대한 목소리가 바로 드러나서다. 최근에는 소설이 잘 써지지 않아 산문에 더 몰두하고 있다.

“백석과 임진왜란에 대한 소설을 쓰고 있는데, 언제 완성할지 모르겠어요. 산문은 그냥 질문만 해도 되는데 소설은 해답을 찾아야 하잖아요. 답이 없으니 글이 막히는 거죠. 소설이 쉽게 써지던 시절은 끝났다는 상실감이 들지만, 지금 쓰는 소설이 예전만 못하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중년의 강을 건너면서 알게 된 것들이 많으니까요.”
 
이설 기자 snow@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