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위주의 시절 복면을 쓰고 항거하던 국민들부터 SNS에서 가면을 쓴 채 활동하는 1인 미디어들까지. 우리 사회에서 복면과 가면은 사라지지 않고 있다.
장승윤 사진부 차장
가면은 영화 속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 현실에서도 ‘가면’ 쓴 사람은 계속 존재했다. 영화 속 주인공처럼 가면 뒤에 나를 숨기고 현실의 탈출구가 필요한 사람이 그만큼 많았던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가면은 과거 민주화 운동과 밀접했다. 군사독재와 권위주의 체제에서 시위는 약자들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최후의 수단이었다. 얼굴을 드러내고 자기의 목소리를 내는 것은 위험천만한 행동이었고 권력에 저항하려고 거리에 나온 시위대는 경찰의 채증으로부터 자신과 동료를 보호하기 위해 마스크나 복면으로 얼굴을 가렸다.
시간이 지나면서 복면은 진화해 가면이 되었다. 작년 ‘오너의 갑질’에 항의하며 항공사 직원들이 ‘가이 포크스’ 가면을 착용하고 광화문에 모였다. 시위대는 같은 가면을 쓰고 하나의 표정으로 모여 있다. 사진 취재를 위해 현장에 간 기자는 가면이 내뿜는 힘에 눌리는 느낌을 받았다. 백 마디 구호보다 훨씬 강한 저항의 메시지를 받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를 해고시킬 수 있는’ 오너가 존재하는 상황에서 불안감에 얼굴을 감추려 한다는 점에서 가면 뒤의 직원들은 민주화 시대 복면 시위대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새롭게 떠오르고 있는 정치 공론장인 인터넷 세계에서도 복면과 가면은 여전히 사라지지 않는 소품이다. 익명을 기반으로 한 온라인 생태계는 가면이 활동하는 데 가장 적합한 환경이다. 미네르바, 드루킹 등의 ‘닉네임 가면’을 쓰고 프로필 사진은 ‘이모티콘 가면’으로 대체한다. 설정한 가면이 싫증나면 바꾸면 된다. 이렇게 모인 ‘온라인 가면 부대’는 한낮 광장에 모여 구호를 외치고 돌아가는 시위대와는 달리 채증도 어렵거니와 메시지가 시공간 안에서 사라지지 않고 남아 있기에 더 위력적이다. 실제로 그 힘이 잘못 쓰여 사회에 악영향을 주기도 했다.
TV가 아닌 유튜브에서 지지자들을 늘려가고 있는 논객들 중 가면을 쓰고 방송을 하는 트렌드가 눈에 띈다. ‘가면 유튜버’들이 하나둘씩 생겨났고 영향력이 커지고 있다. 가면 유튜버끼리 하나의 계파가 되어 한목소리를 낼 때도 있고 서로 입장이 다르면 설전을 벌이기도 한다. 구독자들은 좋아요, 댓글, 공유 같은 방식으로 동참한다. 콘텐츠 생산자와 소비자 모두 ‘익명이라는 가면’을 쓰고 있다. 이쯤 되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가면무도회’라고 불러도 무방할 듯하다. 가면을 쓰는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회사를 다니고 있기에, 인지도가 없기에, 오히려 얼굴을 드러내지 않고 콘텐츠로만 승부하고 싶기에, 반대로 내가 올린 콘텐츠에 자신이 없기에…. 그런데 만약 자신의 입장에 대해 ‘익명’의 다수가 공격하는 것이 두려워서 가면을 쓰고 나선다면 유튜버들을 마냥 비겁하다고만 말하기는 어렵지 않을까.
표현의 자유, 다름을 존중받을 권리는 지난 수십 년간 한국 사회의 과제였고 꿈이었다. 혹시라도 우리 사회가 여전히 다른 의견에 대해 ‘좌표’를 찍어 공격하고 다양성을 인정하지 못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는 것은 아닌지 궁금하다.
가면을 쓰는 사람이 줄어들지 않는 현상, 온라인 가면무도회장으로 도피해 가는 우리 사회의 다양한 목소리를 보면서 생각이 많아진다.
장승윤 사진부 차장 tomato9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