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고갱, ‘야만인 이야기’, 1902년.
1891년 원시의 순수미를 찾아 남태평양의 타히티섬으로 떠난 고갱은 1901년 타히티보다 더 외딴섬인 히바오아섬으로 이주해 말년의 걸작들을 남겼다. 고갱이 죽기 1년 전에 그린 이 수수께끼 같은 그림 속에도 야코프의 모습이 등장한다. 화면 가운데 여인은 토호타우아라는 원주민 여성으로 고갱은 그녀를 애니미즘(무생물에도 영혼이 있다고 믿는 것)의 화신으로 그렸다. 뒤에는 원주민 청년이 부처의 모습으로 앉아 있고, 그 왼쪽에 있는 남자가 바로 야코프이다. 고갱은 친구를 빨간 머리에 뾰족한 턱을 손에 괴고 탐욕스러운 눈빛으로 앞을 응시하고 있는 유대 기독교인으로 묘사했다. 애니미즘을 모든 종교의 기원으로 보았던 당시 유행했던 사상을 반영한 것이기도 하지만 친구를 욕심 많고 교활한 모습으로 묘사한 데는 이유가 있었다.
타히티로 오기 전 고갱은 야코프와 함께 프랑스 바닷가 마을 르풀뒤의 한 여관에 공동 작업실을 차렸다. 야코프는 절대 고갱의 예술적 경쟁 상대가 될 수 없었지만 연애에 있어서는 한 수 위였다. 둘 다 여관 주인 마리 앙리를 좋아했지만 그녀의 선택은 야코프였다. 고갱은 어느 정도 예술적 성취는 이뤘지만 가난했고, 야코프는 네덜란드의 부유한 유대인 사업가 집안 출신이었기 때문이다. 마리가 야코프의 아이를 임신하면서 야코프는 고향으로, 고갱은 타히티섬으로 떠난 뒤 두 친구는 두 번 다시 만나지 않았다. 야코프가 죽은 지 7년 후 그린 그림인데도, 고갱은 여전히 그를 교활하고 욕심 많은 야만인의 모습으로 묘사했다. 예술의 라이벌은 그리움의 대상이지만 사랑의 라이벌은 죽기 전까지도 용서가 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이은화 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