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주부 이명숙 씨는 한때 철인3종 여자부 최강자로 군림했다. 하지만 우여곡절 끝에 철인3종을 등한시하고 자전거에만 집중하다 보니 몸의 밸런스가 깨졌다. 최근 다시 전성기 체력을 되찾기 위해 본격적으로 훈련에 나섰는데 부상이 따르는 등 과거보다 힘든 과정을 겪고 있다. 이명숙 씨 제공
양종구 기자
가정주부였던 그에게 운동은 삶의 유일한 활력소였다. 집안일 하고 아이 키우는 단조로운 삶에서 운동은 탈출구였다. 과거 단 한 번도 운동을 한 적이 없지만 서울 잠실 롯데월드 수영장에 등록한 뒤 단 하루도 빠지지 않고 나갔다. “매일 새벽 1시간이었지만 ‘이명숙’이란 이름으로 물살을 가른 그 1시간이 모든 스트레스를 날려줬다. 내 존재 의미도 찾아줬다.”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마라톤에서 황영조가 금메달을 획득하는 장면을 본 뒤에는 달리기를 시작했다. “황영조 선수가 결승선을 통과한 뒤 쓰러졌다. 인간 한계에 도전하는 게 무엇인지 알고 싶었다. 그래서 혼자 올림픽공원과 남한산성을 뛰어다녔다.” 수영장 가기 전에 한두 시간 달렸다.
1999년까지 ‘나 홀로’ 즐기던 이 씨는 당시 외환위기를 맞아 국내에 마라톤대회 출전 붐이 일자 그해 말 하프코스를 완주했다. 이듬해 풀코스를 완주하면서 풀코스에 빠져들었고 철인3종까지 시작했다. 2001년 강원도 철원 철인3종 하프코스(수영 2km, 자전거 90km, 마라톤 21.0975km)에서 우승한 뒤 2004년까지 각종 철인3종 대회에서 1위를 놓치지 않았다. 2004년 10월엔 세계 최고 권위의 하와이 철인3종 ‘철인코스’(수영 3.9km, 사이클 180km, 마라톤 42.195km)를 완주했다. 2005년엔 한 실업MTB팀 소속 엘리트 선수로 잠깐 활약하기도 했다.
하지만 엘리트 선수로 활약하며 받은 스트레스로 운동에 회의를 느껴 1년여를 쉬는 동안 자격증을 취득해 2007년부터 동호인들 자전거 타기 교육을 시키는 데 집중했다. 자전거로 4대강을 국내 ‘12호’로 완주하는 등 계속 페달을 밟았지만 수영과 마라톤은 거의 하지 않았다.
이 씨는 올봄 다시 예전과 같이 운동을 하려고 시도했지만 큰 어려움에 봉착했다. 몸이 예전 같지 않았던 것이다. “내가 너무 처져 있어 보이니 큰딸이 ‘다시 하와이 철인3종에 도전해 보라’고 해서 운동을 시작했다. 그 출전 티켓을 따려면 국내 선발전 철인코스에서 1위를 해야 한다. 그런데 예전같이 훈련하다 보니 부상이 자주 왔다.” 전문가 진단 결과 몸의 밸런스가 깨졌다. 한동안 자전거만 타서 나타난 현상이다.
잘나가던 선수가 오랜 시간 쉬었다 다시 시작할 때 오는 무기력감. 일종의 ‘운동절벽’은 강호의 고수들에게서도 자주 나타나는 현상이다. 갑작스러운 생활 변화나 부상으로 장시간 운동을 하지 않다 다시 시작하면 훨씬 힘들다. 아주 당연한 현상이다. 그런데 대부분 과거 생각에 빠져 이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한다.
이 씨는 “50대 중반까지만 해도 운동을 안 하다 2개월 정도 몸 만들면 한 80%는 돌아왔다. 2, 3년 차이인데 이젠 너무 힘들다. 과거 내가 했던 훈련을 제대로 소화 못 한다”고 했다. 그는 “이젠 다시 꾸준하게 운동할 계획이다. 그리고 1년에 최소 한두 번은 나를 위한 도전을 하겠다. 그래야 평생 건강하게 스포츠를 즐길 수 있을 것 같다”며 각오를 새롭게 했다.
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