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경화 외교부 장관과 고노 다로 일본 외상이 어제 방콕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을 계기로 만났지만 양국 간 간극을 재확인하는 데 그쳤다. 강 장관은 일본의 경제 보복 조치가 자유무역 원칙을 훼손하는 세계무역기구(WTO) 규정 위반이라며 철회를 요구했지만 고노 외상으로부터 이렇다 할 답변을 얻어내지 못했다. 강 장관은 또 일본이 한국을 화이트리스트(백색국가)에서 배제할 경우 한국 정부가 내놓을 대응 카드 중 하나로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을 검토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고 한다.
일본은 오늘 각의에서 한국을 백색국가에서 제외하는 수출무역관리령 개정안을 처리할 가능성이 높다. 미국이 일본에 대해 수출 규제 강화 2탄(백색국가 제외)을 진행시키지 말 것을 요구했고, 세계 유수의 언론매체들도 백색국가 제외 결정이 세계 경제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비판 수위를 높이고 있지만 아베 정부는 오불관언의 태도다.
물론 미국이 ‘현상동결 협정(standstill agreement)’을 제안하는 등 적극적인 중재 자세를 보이고 있으므로 아베 정부가 무작정 강경책 수위를 높여가지는 않겠지만 일단 백색국가 제외 결정이라는 선은 넘을 것으로 보인다. 한일관계가 당분간 더 대립국면으로 치달을 가능성이 큰 것이다. 이런 어려운 상황속에서 오늘 오후 열릴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과 한일 외교장관의 3자 회동은 갈등을 봉합하고 외교의 힘으로 협상을 이어갈 작은 실마리라도 찾는 전기가 되어야 한다.
사실 강제징용 배상이나 수출 규제를 둘러싼 마찰은 외교장관들이 재량권을 갖고 해결책을 찾는 데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 두 나라 최고지도자가 풀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한일 모두 신뢰를 훼손시키고 감정을 상하게 하는 행동은 최대한 자제해야 한다. 그 어떤 경우에도 외교적 해결 자세를 끈기 있게 견지해 나갈 필요가 있다. 작금의 동북아 안보 정세는 한미일 3각 공조가 그 어느 때보다도 중요한 상황이다. 한일이 극한의 소모전을 계속한다면 두 나라 모두 내상을 입을 것이며 그 경우 과연 어느 나라가 뒤에서 웃을지도 고심해 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