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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사고 억누르자… 과학고-영재학교 입시학원으로 ‘우르르’

입력 | 2019-08-02 03:00:00

서울 대치동 학원가 ‘풍선효과’




지난달 29일 오후 10시 서울 강남구 대치동 학원가의 한 건물에서 학생 30여 명이 우르르 몰려나왔다. 대부분 초등학생으로 보였다. 건물 외벽에는 ‘올림피아드 대비반’ ‘영재고 ○○명 합격’ 같은 내용의 광고 포스터가 걸려 있었다. 이곳은 주로 초중학생을 대상으로 과학고와 영재학교 입시를 준비하는 전문학원이다. 저마다 손에 프린트물을 든 학생들은 가방을 메거나 소형 캐리어를 끌고 학원 앞 도로로 달려갔다. 도로는 15분 전부터 차량들이 몰려 북새통이었다. 자녀의 모습을 본 학부모들은 여기저기서 손짓을 하거나 경적을 울렸다.

요즘 과학고나 영재학교 진학을 준비하는 학원들의 풍경은 이와 비슷하다. 자율형사립고(자사고)와 외국어고(외고)의 미래가 갈수록 불안해지면서 과학고나 영재학교에 대한 관심이 부쩍 높아진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정부와 교육당국이 자사고와 특목고를 ‘특권학교’로 지목하고 지정 취소 등이 현실화하면서 이 같은 현상이 더욱 두드러질 것으로 보고 있다.

전국적인 관심을 모았던 전북 전주 상산고의 경우 지난달 26일 교육부의 부동의 결정 덕분에 가까스로 지정 취소 위기를 모면했다. 하지만 학원가의 분위기를 바꿔놓지는 못했다. 대치동의 한 입시학원 관계자는 “이미 전북도교육청이 상산고를 평가에서 떨어뜨렸다는 발표가 나자 자사고 준비반의 학생 20명 중 17명이 수강을 취소하거나 과학고 준비반으로 옮겼다”고 말했다. 그는 “8월 말 과학고 원서마감을 앞두고 첨삭을 위해 대기번호표까지 받을 정도로 열기가 뜨겁다”고 설명했다.

영재학교 인기도 매년 높아지고 있다. 진학설명회 분위기는 ‘대입설명회’ 못지않다. 이달 초 한 영재학교 전문학원이 주최한 진학설명회는 공지가 올라오자마자 순식간에 신청이 마감됐다. 신청자 대부분은 초등생 학부모다. 기자가 학원 측에 문의했지만 “서울, 경기 등 여러 곳에서 설명회를 진행하는데 빈자리가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올 4월 원서를 접수한 전국 8개 영재학교의 경쟁률은 15.32 대 1로 매년 꾸준히 높아지고 있다.

지금까지 선출된 진보교육감마다 자사고와 외고를 없애 고입 경쟁을 완화하겠다고 주장했다. 치열한 내신 경쟁 탓도 있지만 언제 문 닫을지 모르다 보니 자사고와 외고 인기는 계속 떨어지고 있다. 하지만 같은 특수목적고(특목고)인 과학고 사정은 반대다. 정부 정책의 ‘무풍지대’라는 인식이 퍼지면서 수월성 교육을 원하는 학생과 학부모의 선택이 늘고 있다. 임성호 종로학원하늘교육 대표는 “자사고와 외고 폐지는 고교 입시 경쟁을 완화시키기보다 과학고나 영재학교로의 쏠림현상을 가속화할 것이다”라고 분석했다.

고입학원들에 따르면 과학고와 영재학교 진학 준비는 보통 초등학교 3∼5학년 때 시작된다. 초등학생 때 고교 수학을 모두 마치고 중학교 때 수학·과학 올림피아드에서 이른바 ‘색깔 있는 상(금·은·동)’을 받는 게 정석 코스로 알려졌다. 9개월가량 영재학교 준비학원을 다닌 뒤 과학고에 진학한 A 군(16)은 “부모님이 권해서 다녔는데 너무 힘들었다. 과제까지 마치면 매일 자정이 넘었다”고 말했다.

영재학교 입시컨설팅 전문가 A 씨는 “평소에는 월 200만 원, 올림피아드 시즌이나 방학 때는 400만 원 가까운 학원비가 나온다”며 “사교육의 난이도와 비용으로 보자면 과학고와 영재학교 입시가 ‘끝판왕’이다”라고 말했다.

강동웅 leper@donga.com·김수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