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라이온 킹’.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제공
▽남자아이=아, 주인공인 수사자 ‘심바’와 암사자 ‘날라’의 우정과 사랑이 낭만적이에요. 저도 나중에 이런 올곧고 매력적이며 저를 바른 길로 인도해 주는 주체적인 여자친구를 만나고 싶어요.
▽못돼먹은 아저씨=무슨 큰일 날 소리를. 맨날 만화 채널만 보다 바보 되지 말고 내셔널지오그래픽도 보아야지. 사자 무리엔 오로지 성체 수컷 한 마리만이 존재할 수 있단다. 가장 강한 수컷 하나가 다수의 암컷을 거느리며 자기 유전자를 미친 듯이 퍼뜨리지. 아바의 노래 제목처럼 ‘위너 테이크스 잇 올(The Winner Takes It All)’, 승자가 다 가진다는 건 인간을 포함한 모든 동물 세계의 진리야. 심지어 사자 왕은 자기 아들이라도 어른이 될라치면 무자비하게 무리 밖으로 쫓아낸단다. 아들마저 잠재적 경쟁자로 보아서야.
▽남자아이=으앙. 그게 무슨 점 하나 찍고 딴 여자 되는 막장 드라마 같은 소리예요.
▽못돼먹은 아저씨=감성의 매혹적인 장막을 걷어내고 냉철한 이성으로 헤집어볼 때 서울대 갈 수 있단다.
▽여자아이=얼마 전 ‘어벤져스: 엔드게임’을 보고 펑펑 울었어요. 아이언맨은 억만장자인 데다 예쁜 아내도 있고 야무진 아들도 둔 ‘다 가진’ 사람인데도, 지구를 구하려 스스로 목숨을 던졌으니까요.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바로 이것임을 명석한 저는 깨달았지요. 아이언맨만큼이나 훌륭한 슈퍼히어로가 영화 속 심바 같아요. 아버지를 죽게 한 장본인이 자신이라는 죄책감에 무리를 뛰쳐나와 방황하던 심바는 “하쿠나 마타타”를 외치는 멧돼지와 미어캣을 만나면서 순간의 쾌락에 만족하는 삶을 살지요. 그러나 이런 안빈낙도의 삶을 스스로 버리고 왕국으로 돌아가 삼촌 스카를 어렵사리 물리친 뒤 아버지를 이은 왕이 되어 동물 세계의 균형과 평화를 회복하잖아요?
▽못돼먹은 아저씨=실망, 실망이다. 장차 학사장교가 되어 진정 주체적인 여성으로 성장하겠다는 너는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구나. 곱씹어 보렴. 왜 너는 심바가 다음 왕에 오르는 순간을 당연하게 여기지? 악당의 거짓말에 시도 때도 없이 속아 넘어가면서 관객의 복장을 터지게 만드는 심바는 리더로서의 사리분별이 한참 모자라지. 심바는 단지 왕의 아들로 태어났다는 사실 하나 때문에 다음 왕으로 당연시되고 있어.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운 세상을 문재인 대통령이 꿈꾸고 계신 작금의 대한민국에서 이런 반동적인 영화가 가당키나 하냐? 심바가 무슨 백두혈통이니? 사우디아라비아의 왕자니? 세습 이데올로기는 위험천만하단다. 영화의 엔딩도 큰 문제란다. 새로운 왕이 된 심바와 왕비 날라 사이에서 갓 태어난 아기 사자를 예언자 비비 원숭이가 치켜들면서 ‘다음 왕이 될 존재’임을 만천하에 알리지 않니? 헉. 리더의 아들만이 다음 리더가 된다니….
▽여자아이=아이, 혼란스러워요.
▽못돼먹은 아저씨=영혼에 카오스가 가득할 땐 송가인의 신곡 ‘무명가수’에 나오는 “사랑이 사랑을 사랑하면 저 별처럼 빛날까요”란 노랫말을 되뇌고 또 되뇌어 보렴.
▽여자아이=사랑이 사랑을 사랑한다고요? 무슨 턱 돌아가는 말씀이세요?
▽못돼먹은 아저씨=영화가 딱 이 가사 같단 얘기야. 마음으로 받아들이면 아름답지만, 정색하고 따지면 말이 안 된다는 거지. 그게 예술이란다. 허허.
※유튜브에서 ‘무비홀릭’을 검색하면 ‘라이온 킹’을 똑똑하게 보는 세 가지 질문을 만납니다.
이승재 영화 칼럼니스트·동아이지에듀 상무 sjd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