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석 한국미술시가감정협회 감정위원장이 미술품 가격 산정 모형을 발표하고 있다. 뉴시스
김민 문화부 기자
사단법인 한국미술시가감정협회가 지난달 30일 발표한 ‘미술품 가격 결정 모형’을 보고 A 작가는 이렇게 말했다. 그의 발언에 공감하는 미술계 관계자가 적지 않았다. 협회가 발표한 가격 결정 계산식에 국내 화랑가의 고질적 문제로 지적돼 온 항목이 대거 포함됐기 때문이다.
많은 반발을 산 대목은 작가의 학업, 전시활동, 인지도를 통해 ‘통상가격’을 산출한다는 내용이었다. 학업 항목에는 미술 비전공(1점), 미술대학 졸업(2점), 미술대학원 졸업(3점)의 차등을 뒀다. 이 밖에 전시 개최 횟수, 수상 및 소장 이력도 따졌다. A 작가는 “작품 외적 요소를 ‘객관적’이라고 포장하는 것이 전형적 공공기관의 행정편의적 방식”이라고 했다. 실제로 이 계산식은 협회가 국립현대미술관(국현)의 의뢰로 국현 산하 미술은행의 소장품 가격을 재산정하기 위해 만들었다.
그러나 ‘정성 평가’ 기준도 명쾌하진 않다. 김영석 협회 감정위원장은 “첫째는 형태, 둘째 색채, 셋째 기법, 넷째 재료를 본다”고 설명했다. 변기로 만든 마르셀 뒤샹의 ‘샘’이나 캔버스에 사각형만 그린 말레비치의 ‘검은 사각형’은 이 기준에선 가치가 떨어진다. 이에 대해 김 위원장은 “외국 작가는 ‘우리’ 계산식이 맞지 않는다”고 했다.
국제 미술시장은 작품을 최우선으로 가치를 평가하는 원칙이 확립돼 있다. 작가의 학력과 전시 경력은 참고할 뿐 가격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미술사가 전하현 씨에 따르면 국제 미술계는 작품의 미술사적, 미학적 가치를 가장 중요시한다. ‘샘’과 ‘검은 사각형’이 수천억 원의 가치를 지니는 것도 이런 이유다. ‘미술품 가격에는 이유가 있다’의 저자 허유림 독립큐레이터는 “국내 작가와 소장자를 위해서라도 국제적 흐름을 반영한 기준 정립이 시급하다”고 했다.
협회는 정부 요청으로 축적된 자료를 참고해 만들다 보니 이런 형태가 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협회뿐 아니라 국내 미술계가 작품 가치에 관한 보편적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한 것은 사실이다. 미술은행 관계자는 “협회의 계산식을 적용할지는 미정”이라고 했다. 기왕 예산을 들여 하는 일이라면 미술계에 기여할 수 있는 선진적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 이대로라면 화가들이 ‘스펙 쌓기’에나 열을 올리는 촌극을 조장할 뿐이다.
김민 문화부 기자 kimm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