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일 3국 외교장관은 일본이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수출 절차 간소화 대상 국가)에서 배제하기로 각의 결정을 내린 뒤인 2일 오후 4시 반 만나 회담을 가졌다. 한일 관계에 유례없는 악재가 이미 터진 상황에서 ‘관여’ 역할을 강조해온 미국이 그제야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한 것. 그럼에도 미국은 한국의 화이트리스트 배제를 계기로 한일 갈등 중재에 더 적극적으로 나서겠다는 의사를 공개적으로 밝히지는 않아, 당분간 ‘미국 카드’에만 기대 상황 급반전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이날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 고노 다로 일본 외상과 한미일 회담을 마치고 기자들과 만나 “(회담에서) 일본 측의 화이트리스트 관련 결정에 대해 강한 유감 표명을 전달했다”며 “(미국 측에서도) ‘이 상황에 대해 많은 우려를 갖고 있고, 또 앞으로 어렵지만 어떤 노력을 할 수 있을지 역할을 다 하겠다’는 이야기가 있었다”고 말했다. 폼페이오 장관이 한일 갈등이 악화돼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한일 외교장관 앞에서 직접 밝혔다는 얘기다.
강 장관은 “오늘 이 사태가 있기 전까지 (한국은) 끝까지 대화를 통해 문제를 풀자는 얘기를 전했고 미국도 같은 노력을 기울였다”며 미국의 막후 중재 시도가 있었음을 밝혔다. 김현종 국가안보실 2차장도 같은 날 “한일 갈등을 해결하고자 하는 노력에 최근 미국도 동참했다”며 “(미측에서) 소위 ‘현상동결 합의’ 방안이 제시되기도 했다”고 말했다.
때문에 외교가에선 미국이 더 적극적으로 한일 갈등 해소에 나서게 하기 위해선 한국이 더 세심한 전략으로 설득작업에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우리의 부담을 최소화하면서 미국을 움직이게 할 모종의 카드를 던지는 전략적 접근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일각에선 미국이 한일 갈등이 본격화된 후 호르무즈 해협 방위 참여 이상의 청구서를 내밀지 모른다는 말도 나오고 있다. 권철현 전 주일대사는 “미국은 (현재) 중재를 하는 척만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며 “개입할 시기를 찾다가 실제 개입한다면, 방위비 분담금 등을 고리로 청구서를 내밀 수 있다”고 평가했다.
그럼에도 한미일은 과거사 및 무역문제와 안보를 분리해서 접근하자는 ‘투 트랙’ 원칙을 지키려는 듯 화이트리스트 배제가 결정된 이날 한미일 3자 북핵수석대표 협의를 진행했다. 외교당국은 한일 갈등으로 인해 한미일 공조 태세가 흐트러지며 북한에 잘못된 메시지가 전달 될 것을 우려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방콕=한기재 기자 recor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