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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개발 가로막는 노동시간 규제 풀어야[동아 시론/이경묵]

입력 | 2019-08-03 03:00:00

제조업 세계 1위 日 15개-韓 0개, 우리만 경쟁력 추락… 중국에도 추월
특별연장근로 허용은 미봉책 불과, 마음껏 연구해야 新산업도 키운다




이경묵 서울대 경영대 교수

2017년 기준 한국 경제의 무역의존도는 70%다. 수출과 수입을 더한 교역액을 국내총생산(GDP)으로 나눈 값이다. 우리 경제에서 제조업이 GDP의 30%, 수출의 90%를 차지한다. 한국 경제의 미래를 위해 제조업의 국제 경쟁력 강화가 여전히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수치다. 우리 기업은 일본을 모방하면서 성장해 왔기 때문에 일본 기업과 직접 경쟁하는 곳이 많다. 대부분의 완제품 분야와 국산화에 성공한 소재, 부품, 장비 분야에서 일본 기업과 직접 경쟁한다. 우리 기업의 실력이 좋아지긴 했지만 일본을 뛰어넘은 산업은 몇 개 없다. 일본 미쓰이스미토모은행에서 5월 ‘미중(美中) 무역 마찰 동향’이라는 보고서를 발간했다. 2017년을 기준으로 제조업 35개 분야에서 특허를 기준으로 해당 분야 세계 최고의 기술력을 가진 나라와 중국의 등수를 제시하고 있다.

일본은 제어기술, 광학, 반도체, 전기기계기구, 재료와 야금, 공작기계, 기계요소 부품, 고분자화학 등 15개 산업 분야에서 1등이다. 안타깝게도 우리나라가 1등인 산업은 하나도 없다. 메모리 반도체 소자 관련 특허는 우리나라가 1등이지만 반도체 관련 소재, 부품, 장비 분야에 대한 특허까지 포함하면 반도체 산업에서도 일본이 1등이다. 오랜 산업의 역사, 뛰어난 기초과학 지식, 한 분야만 깊게 파는 문화, 혼을 담아 물건을 만들겠다는 정신, 협력적인 노사 관계 등으로 일본에는 세계 최고 기업이 매우 많다. 특히 소재, 부품, 장비 분야에서 독보적인 경쟁력을 갖고 있다. 우리 기업은 그것에 의존해 왔기 때문에 일본이 마음먹고 경제 제재를 가하면 제대로 돌아갈 첨단제품 제조공장이 별로 없을 정도다.

문제는 최근에 추가된 규제로 인해 우리 제조업의 경쟁력이 급속히 추락하고 있다는 점이다. 일본 대졸 신입사원 초임이 월 250만 원 정도다. 연구개발 인력의 경우 일본에서는 예외 조항을 활용할 수 있고, 최근에는 ‘탈시간급 제도’를 통해 노동시간이 아닌 성과로 평가하는 제도를 만들려 하고 있다. 우리 기업의 실력이 일본 기업 대비 절대 열위인데 우리 근로자는 더 많이 받고 더 적게 일한다. 일본에서는 노사가 머리를 맞대고 경쟁력을 강화하는데 우리는 노사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 안타깝게도 일본과의 격차가 다시 커질 가능성이 크다.

우리 업체들은 중국 기업과도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는데, 여러 분야에서 중국 기업에 뒤처지고 있다. 위에 언급한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은 3개 산업에서 1등, 9개 산업에서 2등, 9개 산업에서 3등, 나머지 14개 산업에서 4등을 차지하고 있다. 저렴한 인건비, 정부의 엄청난 보조금, 뛰어난 인재, 유연한 노동시간 등을 무기로 여러 분야에서 우리를 추월했다. 우리가 연구실에 야전침대를 두고 연구개발을 해서 국제 경쟁력을 높인 것을 화웨이를 비롯한 중국 기업들이 모방하고 있다. 대규모 인력을 투입해서 추격 전략을 실행하고 있기 때문에 미국이 견제할 정도다.

지금 같은 상황이 지속되면 우리 제조업의 국제 경쟁력은 급속히 하락할 수밖에 없다. 우리 기업의 실력에 맞는 정책과 규제로 대전환하지 않으면 우리 제조업의 미래, 국가의 미래는 굉장히 어둡다. 새로운 산업과 기존 제조업에서 새로운 형태의 사업을 할 수 있도록 규제를 확 풀어야 한다. 제조 입지로서의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세계 최강 수준의 노동시장 규제도 풀어야 한다. 특히 연구개발 인력에 대한 노동시간 규제 완화가 절실하다. 이들이 미국, 일본, 중국의 연구개발 인력보다 더 적게 일한다면 우리 제조업은 살아남을 수 없다. 연구개발의 경쟁력을 높여야 산업 경쟁력도 높일 수 있고 신(新)성장 산업도 키울 수 있다. 그래야 근로자의 일인당 부가가치와 소득이 높아지고, 높은 연봉을 받는 일자리가 많아진다.

한일 갈등으로 정부에서는 일본의 수출 규제 품목을 국산화하기 위한 연구개발에 특별연장근로를 허용한다고 하는데 이는 미봉책에 불과하다. 제조업 전 분야에서 연구개발을 통해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도록 전면적인 노동시간 규제 완화가 필요하다. 미국은 과학, 기술, 공학, 수학 분야의 전문지식 근로자에 대해서는 노동시간 규제를 적용하지 않고 있다. 우리가 지금처럼 일본에 수모를 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연구개발 인력에 대해 노동시간 규제를 적용하지 말아야 한다.
 
이경묵 서울대 경영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