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3·1운동 임정 100년, 2020 동아일보 창간 100년]
3·1운동 100년 역사의 현장 2부 <제67화> 황해 수안
수안 천도교인들 문명개화론 수용, 민주-자유-공화 정신 새 정부 추구
임시의정원 헌장 제1조로 이어져
천도교는 3·1운동의 대중적 확산을 위해 ‘조선독립신문’을 발행했다. 당시 일제는 조선인의 신문 발행을 허락하지 않아 지하신문 형태로 발행됐다. 사진은 이종일(앞줄 가운데) 등 조선독립신문 발행의 주역들. 천도교 중앙도서관 제공
수안 만세운동을 연구한 조규태 한성대 교수는 “수안 천도교인들은 교리강습소를 통해 문명개화론, 계몽주의 등 근대적인 지식을 수용하였고, 그 결과 공화와 자유사상에 입각해 조선 독립을 주장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당시 한반도 서북지역의 천도교인들은 동학의 평등 이념과 ‘개벽’이라는 새로운 세계 질서를 현실화하려는 욕구가 매우 컸다. 이는 일제에 대한 저항뿐만 아니라 전통적으로 서북지방 출신이 집권층으로부터 받아온 차별에 대한 반발이기도 했다.
반면 북한지역은 달랐다. 황해도만 해도 수안을 비롯해 옹진 황주 봉산 등지에서 만세시위가 펼쳐졌고 평안남·북도와 함경남도에서도 만세운동이 있었다. 이들 지역은 대체로 천도교 세력이 강한 곳이었다.
조선독립신문 창간호. 부산박물관 제공
안영배 논설위원 oj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