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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보복 칼, 언제 어떤 품목에 휘두를지 몰라”… 산업계 초긴장

입력 | 2019-08-03 03:00:00

[日 2차 경제보복 강행]日 수출규제 사실상 全산업 확대




2일 일본 정부가 화이트리스트(수출 우대국)에서 한국을 제외했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국내 산업계는 그야말로 ‘충격과 공포’에 휩싸였다. 일본 수출 규제 대상이 반도체 핵심 소재 3개 품목에서 화학, 기계, 자동차부품, 비금속(보통금속) 등 사실상 거의 모든 산업으로 확대된 데다 일본 정부가 어떤 품목을 정밀 타격할지 모른다는 ‘불확실성’이 겹치면서 재계는 큰 혼란에 빠졌다. 삼성, 현대차, SK, LG, 롯데 등 5대 그룹은 비상경영 체제에 돌입했다.

국내 대기업 1차 부품 협력사 관계자는 2일 “칼자루를 쥐고 있는 일본 정부가 앞으로 누구에게, 언제 칼을 휘두를지 아무도 모르는 것 아닌가. 소재 국산화도 수년이 걸릴 일이니 우리 같은 중소·중견기업들은 그야말로 ‘패닉’ 상태”라고 말했다.

일본이 한국을 제외한 화이트리스트는 우방국가에 전략물자 1194개의 수출 절차를 간소화해 주는 제도다. 앞으로 한국 기업들은 이 품목을 수입할 때마다 일본 정부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 어디에 쓸지, 완성품은 누구에게 팔지를 요구하면 이를 증명할 수 있어야 한다. 일본 정부가 온갖 이유를 들면서 얼마든지 허가를 지연시킬 수 있다는 뜻이다.

실제로 지난달 4일 한국 수출 주력 제품인 반도체를 겨냥해 일본 정부가 수출 규제를 강화한 에칭가스(고순도 불화수소), 포토레지스트,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등은 아직까지 수입이 한 건도 이뤄지지 않았다.

○ “규제 어디로 향하나” 재계 덮친 긴장감

일본은 중국 미국에 이어 한국의 수입 대상국 중 세 번째다. 지난해 총 546억 달러(약 65조4600억 원)어치를 수입했다. 현대경제연구원이 지난달 발표한 ‘한일 주요 산업의 경쟁력 비교’ 보고서에 따르면 일본 수입 의존도가 90%가 넘는 품목은 48개, 50% 이상인 품목은 253개나 된다. 정밀 기계 및 부품, 자동차, 전자, 석유화학 등 일본 정부가 손에 들고 있는 수출 규제의 ‘선택지’가 많다는 뜻이다.

‘제2의 반도체’로 평가받는 리튬이온배터리 소재도 그중 하나다. 전기차 배터리 4대 핵심소재 중 하나인 분리막의 경우 LG화학 삼성SDI 등은 각각 일본 도레이, 아사히카세이로부터 상당량을 공급받고 있다. 또 전지 소재를 감싸주는 파우치 필름의 경우 거의 전량을 일본에서 수입하고 있다. 디스플레이 업계는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패널 소재인 섀도마스크를 일본 DNP 등으로부터 거의 전량 수입 중이라 소재 확보에 비상이 걸렸다.

국내 자동차 업계도 긴장감이 높아졌다. 자동차 공장에서 쓰는 정밀기계나 공작기계 등은 일본 부품에 의존하는 것이 상당수다. 만약 수급에 문제가 생기면 자동차 전체 생산에 미치는 영향이 상당할 수밖에 없다.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완성차 부품 소재에 대한 규제가 완성차 생산에 영향을 줄 수 있다”며 “주로 1, 2차 협력사들이 영향권이라 대체품을 함께 찾는 중”이라고 말했다.

중소·중견기업의 우려는 더욱 크다. 자동화 설비를 제작하는 한 중소기업은 화이트리스트 제외 결정에 대비해 지난달부터 일본에서 직수입하던 계측기 부품을 일본 거래처의 중국 지사를 거쳐 우회 수입하고 있다. 이 회사 대표는 “기계 설비류는 부품이 하나만 없어도 완제품을 못 만드는데 일본이 우회 수입마저 막을까 걱정된다”며 “중소기업은 대기업처럼 해외 곳곳에 지사가 있는 게 아니어서 대체품을 찾는 게 매우 벅차다”고 말했다.

○ “한국 제조업 근간으로 확전”

이날 한국무역협회 대한상공회의소 중소기업중앙회 한국경영자총협회 한국중견기업연합회 등 경제 5단체는 성명을 통해 깊은 우려를 표했다. 중소기업중앙회는 당장 화이트리스트 제외로 인해 타격이 클 것으로 예상되는 업종을 대상으로 긴급 실태 조사를 벌일 계획이다.

전문가들은 일본이 1차 수출 규제로 반도체를 정밀 타격했다면 이번 2차 규제를 통해 한국 제조업 전체에 영향을 미치려 한다고 보고 있다. 타격이 예상되는 기계류의 경우 국내 제조 현장에 중요 설비로 쓰이고 있기 때문이다.

김병현 NH투자증권 연구원은 “한국의 미래 먹거리를 비롯해 잠재성장률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산업의 피해가 예상된다”며 “장기화된다면 경제성장률 하향 및 수출 물량 감소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서동일 dong@donga.com·김호경·김자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