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31일(현지시간)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참석차 태국 방콕에 도착해 한-미얀마 양자회담에 앞서 생각에 잠겨있다. 이날 고노 다로 일본 외무상이 현지 숙소에 도착하고 있다. 2019.7.31/뉴스1 © News1
일본의 화이트리스트 제외 결정을 앞두고 한국 외교력의 시험대로 평가받았던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이 사실상 별다른 소득 없이 막을 내린 가운데 냉각된 한일 관계는 당분간 돌파구없이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태국 방콕에서 열린 ARF 다자무대에서 강경화 장관과 고노 다로 일본 외무상은 공개적으로 설전을 주고받으며 공방을 벌였다. 다만 싱가포르 등 제3국들이 일본의 조치를 비난하며 사실상 우리 측에 힘을 보태면서 일단 국제사회 여론전에서는 판정승을 거뒀다는 평가가 나온다.
외교부 고위 당국자는 2일 일본이 끝내 화이트리스트 제외 결정을 강행한 것과 관련 “이미 어려웠던 상황이 더 어려워지는 것이어서 (한일간) 냉각기가 분명히 필요한 것은 사실”이라며 “현재 (양측이) 상당히 격앙된 상황에서 장기적 전략을 생각하는 것은 어려움이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일본 정부는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한 개정안이 오는 7일 공포되며, 효력은 28일부터 발생한다고 발표했다.
다만 정부는 일측에 태도 변화가 없을 시 24일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ㆍ지소미아) 파기를 통보할 것으로 보여, 남은 3주가 한일 관계의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인다. 지소미아는 두 나라가 별도의 파기 의사를 밝히지 않으면 1년씩 자동 연장되는 구조여서 우리가 이를 파기하려면 24일까지 일측에 통보해야한다.
고위 당국자는 “언제든지 일본이 해당 조치를 철회하고 대화에 나온다면 대화할 준비가 돼 있다. 그 사이에 일본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대책이 나올 것“이라고 공은 일본에 있음을 거듭 강조했다. 냉각기가 얼마나 이어질지 여부에 대한 질문에는 ”지금으로서는 예상 못하겠다“며 말을 아꼈다.
한일이 평행선을 반복했지만, 여론전에서는 다자무대에서 이례적으로 일본의 조치에 대한 제3국의 비판이 잇따라 나오는 등 우리측 우군을 확보하는 성과도 있었다. 그러나 이는 우리 외교력이 승리라기 보다는 일본 측의 실수에 따른 것이란 평가가 나온다.
특히 싱가포르의 비비안 발라크리쉬난 외교장관은 고노 외무상의 발언에 준비한 원고를 내려놓은 뒤 그를 향해 일본의 화이트리스트에 아세안 국가가 한 곳도 포함돼 있지 않은 점을 지적하면서 ”화이트리스트를 늘려가야지 왜 줄여가느냐“고 목소리를 높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자 중국, 태국도 가세해 우리측에 힘을 보탰다.
고위 당국자도 ”아세안 국가들을 약간 얕보는 것처럼 말한 게 고노 외무상이 실수한 것“이라고 말했다.
고노 외무상이 한국의 화이트리스트 제외 철회 요구와 관련 문제의 근원은 한국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이라는 말만 반복한 것도 이번 조치가 과거사 문제에 대한 보복성 조치라는 것을 국제무대에서 시인한 것이란 평가다.
고노 외무상은 다자회의에서 일본에 대한 비판 여론이 제기된 것과 관련 3일 ”여전히 아세안 몇몇 나라보다 한국이 더 좋은 대우를 받기 때문에 대부분의 참가국들은 무엇이 쟁점인지 잘 모르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며 ”아세안측과 일본간에는 수출 관리 문제로 발생한 무역 이슈는 전혀 없다. 그들도 이를 잘 이해해 주고 있다고 본다“고 궤변을 지속했다.
그러나 공개 모두 발언에서는 한일 갈등과 관련 별다른 언급이 없었고, 일본의 각의 결정 하루 전날 있었던 한중 외교장관 회담에서도 ”WTO를 근간으로 하는 자유무역 체계 질서가 중요하며 계속 유지돼야 한다“는 원론적 입장을 밝히는데 그쳤다. 중국 군용기의 항공방공식별구역(KADIZ) 침입 재발방지 요구에 국제법적으로 문제가 없다는 기존 입장을 반복했고 오히려 사드 문제를 거론 우리측을 압박했다.
폼페이오 장관도 한미일 회담에서 한일 갈등과 유감을 표명하고 역할을 하겠다고 말했으나, 공개적으로 목소리를 내지는 않았다.
(방콕=뉴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