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공사 ‘작업 전날 보고’ 지침 어겨 당일 작업 착수 후에야 보고… 현장 상황 몰라 위험대비 못해
지난달 31일 서울 양천구 목동 지하 배수터널에 빗물이 유입돼 작업자 3명이 고립됐을 당시 이 공사장 안전 상황을 관리 감독해야 할 감리업체는 터널 안에 작업자가 있다는 사실도 몰랐던 것으로 확인됐다.
4일 동아일보가 입수한 시공사의 7월분 작업 일보에 따르면 ‘금일 작업사항’ 항목에 대부분 ‘저류 배수터널, 작업 없음’이라고 기록돼 있다. 사고가 나기 전 일주일 동안은 내내 ‘작업 없음’이었다. 이 문건은 시공사인 현대건설이 감리업체에 7월 1일부터 30일까지 제출한 보고서다. 공사장에서 이뤄진 작업 내용이 당일 기상 상황과 함께 상세하게 적혀 있지만 터널 내에서 이뤄진 점검 내용은 보고에서 빠져 있었던 것이다.
이 공사장의 감리단장도 3일 본보 기자와 통화하면서 “6월 30일 터널 공사를 마친 뒤에는 터널 안에 작업자가 일일 점검을 하러 들어간다는 보고를 받은 적이 없다”며 “이번에 사고가 난 뒤에야 터널 안에 작업자가 있었다는 걸 알았다”고 말했다. 이 단장은 “준공됐기 때문에 감리가 현장에서 ‘감 놔라 배 놔라’ 할 수 없다”고도 말했다. 하지만 준공 후 시운전 기간에도 감리의 확인이 필요하고 올 12월 완료를 목표로 보강공사도 진행 중이었다.
이 공사장의 감리업체는 터널 안에서 어떤 작업이 이뤄지는지 작업 착수 후에야 사후 보고를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국토교통부 업무지침에 따르면 감리는 시공사로부터 작업 하루 전날 다음 날 작업할 내용을 미리 제출받아 검토해야 한다. 하지만 발주처인 서울시 도시기반시설본부에 따르면 이 공사장의 감리업체는 공사 기간 내내 ‘명일(다음 날) 작업계획서’를 미리 받아본 적이 없었다. 공사 계획을 사전에 알리지 않고 시공사가 오전 7시경 작업에 착수하고 오전 9시경 감리에게 당일 작업 내용을 보고하는 방식으로 일해 온 것이다.
만약 감리가 사고 당일 터널 안에서 작업이 진행된다는 사실을 미리 알았거나 시나 구에 해당 사실이 사전에 전달됐다면 안전대책을 마련해 인명 피해를 막았을 가능성도 있다. 서울 양천구 치수과 B 주임은 사고 당일 오전 7시 30분 공사 현장 관계자에게 “비가 더 오면 배수터널 입구가 자동으로 열릴 수 있다”고 알렸다. B 주임이 이때 공사장으로 직접 갔다면 터널 입구를 닫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터널 안에 사람이 있을 거라곤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그는 현장 대신 구청으로 출근했다.
고도예 기자 ye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