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 해변에 ‘책 읽는 버스’가 떴다. 강원 강릉시 연곡해변캠핑장으로 피서를 온 학생들이 4일 소나무 숲 가운데 그네에 앉아 ‘책 읽는 버스’에서 빌린 책을 읽고 있다. 버스 앞에서는 배지 만들기 행사가 열리고 있다. 강릉=조종엽 기자 jjj@donga.com
‘책 읽는 버스’는 사단법인 ‘작은도서관만드는사람들’(대표 김수연 목사)이 운영하고 KB국민은행이 후원하는 이동도서관이다. 대형버스를 개조해 서가와 영상·음향시설, 긴 의자를 설치하고 책 1000여 권과 DVD 100개를 들여놨다. 평소 도서관은 먼 산간 도서 지역의 마을이나 농어촌, 사람들이 모이는 축제 현장을 다니는데 이번에는 휴가철을 맞아 강원도의 캠핑장을 찾은 것.
친구 사이로, 가족들 함께 피서를 온 설유빈 양(서울 월촌초 6)과 서예린 양(서울 가락초 6)이 나란히 버스에 올랐다.
“소나무 향기가 나는 곳에서 책을 보니 읽고 싶은 기분이 더 나네요.”(서예린)
‘책 읽는 버스’와 피서객들이 해마다 비슷한 시기에 같은 곳을 찾다보니, 피서지에서 버스를 만나기를 기다리는 팬도 생겼다. 가족과 함께 캠핑장에 놀러 온 윤호상 군(경기 광명시 철산초 6)은 작년에도 이 캠핑장에서 버스를 만났고, ‘탈무드’를 선물로 받아 가기도 했다. 윤 군은 “올해 또 버스가 기다리는 거 보고 정말 반가웠다”고 말했다. 윤 군의 어머니는 서가에서 ‘82년생 김지영’(조남주 지음)을 뽑아들었다. 그는 “이번에도 책 읽는 버스가 캠핑장에 오길 바랐는데 운이 좋았다. 버스에 볼 만한 책이 되게 많다. 일정이 맞아 내년에도 버스와 같은 기간에 여기로 휴가를 올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버스가 지난달 26~31일 찾은 강원 속초시 설악동 오토캠핑장에 온 최민아 씨(경기 군포시)도 “작년에는 연곡해변캠핑장에서 책 읽는 버스를 만났는데, 이번에는 여기서 만나서 또 책을 빌리러 왔다”고 했다.
“공부를 할 때!”, “시험을 볼 때!”, “6교시 할 때!”
스토리텔링 행사가 열린 ‘책 읽는 버스’ 내부 모습. 강릉=조종엽 기자 jjj@donga.com
“책을 읽을 때!”, “여행을 갈 때!”, “지금 이 순간!”이었다. 기훈 군(광명 철산초 4)은 “독서 선생님이 특별한 일이 없어도 웃으면 행복해진다고 한 말이 기억에 남았다”고 말했다.
책 읽는 버스는 피서객들이 이름과 전화번호만 적고 책을 빌려가도록 한다. 날마다 50권 정도를 대여한다. 각자 숙소에서 보고, 다음날 오전 반납하면 된다. 종종 “뭘 보고 날 믿고 책을 빌려주느냐”, “내가 책을 안돌려주면 어쩌려고 하느냐”는 질문을 받기도 한다. “독서가들의 인성을 믿는다”는 게 운영진의 말이다. 실제 책 회수율은 ‘99.9% 이상’이라고 한다. 최현진 씨(41)는 김애란 소설가의 ‘바깥은 여름’을 빌려가면서 “휴가 오면서 가족들이 집에서 책을 한권 씩 챙겨왔는데, 안 갖고 와도 될 뻔 했다”고 말했다.
버스에 오른 한 학생은 ‘책버스’로 삼행시를 이렇게 지었다. “책을 읽는 것은/버려지는 시간들을/스스로 구원하는 기회다.”
이날 버스에서는 배지 만들기, 논어와 탈무드 등의 포켓북 배포 행사도 열렸다. ‘책 읽는 버스’는 8일까지 연곡해변캠핑장에 머무르고, 10~12일에는 경남 통영한산대첩 축제 현장을 찾아간다. 책 읽는 버스 방문 신청은 작은도서관만드는사람들 인터넷 홈페이지에서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