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과 그의 함대는 꿈쩍하지 않았다. 전술의 첫째 원칙은 내가 유리한 곳에서 싸우는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여기서 이겼다고, 저곳에서 승리한다는 보장이 없다. 이순신은 이 원칙에 충실했고, 부산항 공격은 안 된다고 주장했다. 조선 수군의 전설을 만든 사람이 이순신이건만 선동가들은 “승리할 수 있고 당장 전쟁을 종식시킬 수 있는 행동을 하지 않는다”고 비난하기 시작했다. 선조도 동조하면서 이순신은 해임되고, 비극은 시작됐다. 원균은 전사했지만, 입으로 싸우던 사람들은 반성문조차 남기지 않았다.
역사는 무섭게 반복된다. 단순하고 뻔한 잘못일수록 더 무섭게 반복된다. 40년 후 남한산성. 성을 포위한 청군의 압박이 심해지면서 조선은 성이 함락되거나 항복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됐다. 그러자 몇몇 관료는 이 모든 사태를 초래한 사람이 최명길이니 그를 죽여야 한다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최명길이 무슨 죄를 지었다는 걸까? 청과 화친을 주장하고, 군사행동을 저지하고, 적의 전력을 과장해서 군사들의 사기를 떨어뜨렸다는 죄목이었다. 즉, 더 단결하고 더 강한 정신력으로 싸웠으면 청군을 격파할 수 있었는데, 최명길이 강화를 주장해서 망쳤다는 것이다. 역사는 또 반복된다. 나는 덕분에 역사학자라는 직업으로 먹고살 수 있다고 위로하고 있다.
임용한 역사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