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영 사회부 차장
예를 들면 이렇다. 코스닥 상장사 대표 한모 씨는 거짓정보로 주가를 띄워 180억 원의 부당이득을 챙긴 혐의로 2017년 재판에 넘겨졌다. ‘8조 원 규모의 이란 위성통신망 사업을 따냈다’는 호재에 주가가 두 달 새 4배로 뛰었다. 지난해 10월 1심은 한 씨에게 징역 10년에 벌금 200억 원, 추징금 90억 원을 선고했다. 올해 4월 2심의 판단은 달랐다. 징역 8년에 벌금 4억5000만 원, 추징금은 ‘0원’이었다.
지난해 5월 대법원은 로케트전기 김모 상무에게 징역 2년형을 확정했다. 추징금은 없었다. 그는 신주인수권부사채(BW)를 통해 회사 운영자금을 마련한 것처럼 허위 공시해 주가를 끌어올려 57억 원의 부당이득을 얻은 혐의를 받았다. 김 상무는 감옥에서 2년만 버티면 이익을 모두 챙길 수 있다.
이 같은 판결이 나오는 건 자본시장법상 부당이득금이 ‘위반행위로 얻은 이익이나 회피한 손실액’으로 규정될 뿐 명확한 산정 기준이 없기 때문이다. 피고인의 주가조작 외에 다른 요인이 작용했을 수 있다는 주장이 받아들여지면 부당이득금은 ‘불상’이 된다. 법원도 할 말은 있다. 법에 명확한 기준이 없는 상황에서 검찰의 추정금액을 인용하긴 어렵다는 것이다.
이렇다 보니 피고인들은 유죄를 인정하되 부당이득금 산정에 이의를 제기하는 전략을 짠다. 한 로펌은 “독자 개발한 매매분석 시스템을 활용해 검찰이 주장한 수백억 원의 부당이득을 ‘불상’으로 인정받았다”고 홍보하기도 했다.
검찰도 대응전략을 마련하고 있다. 검찰 내 ‘부당이득 산정 법제화 태스크포스(TF)’는 지난달 한 세미나에서 산정 기준의 초안을 발표했다. 특히 다른 요인을 포함한 전체를 위반행위로 인한 이익으로 봐야 한다는 원칙을 제시했다. 제3의 원인을 주장하려면 불공정거래 행위자가 이를 입증하도록 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심도 있게 논의해 볼 만하다.
검찰의 계산법이 현실화되려면 우선 관련 법부터 통과해야 한다. 구체적인 부당이득 산정방식을 시행령에 규정하도록 한 자본시장법 개정안이 국회에 제출된 상태다. 하지만 국회 정무위의 파행이 길어지면서 제대로 검토하지 못하고 있다.
김재영 사회부 차장 redfoo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