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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F 폐기와 미사일 배치[횡설수설/송평인]

입력 | 2019-08-06 03:00:00


냉전 해체라고 하면 1989년 베를린 장벽 붕괴를 먼저 떠올리지만 그 근저에는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과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서기장의 아이슬란드 레이캬비크 회담, 중거리핵전력(INF) 조약 같은 합의가 자리 잡고 있다. INF 조약은 1986년 10월 레이캬비크 회담에서 논의가 시작돼 수차례 회담 끝에 1987년 12월 체결됐다.

▷미소 간에 직접 위협이 되는 핵 운반체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로 불리는 장거리미사일과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이다. 이를 전략무기라고 한다. 사거리 500∼5500km의 중거리 핵 운반체는 주로 미국 본토에서 떨어진 서유럽과 소련의 동유럽 위성국 사이의 위협이었다. 그래서 전략무기와 구별해 다뤘다. 미소에 위협이 덜 직접적인 중거리핵전력 폐기를 우선 확정하고 전략무기 감축 논의를 시작하는 것이 탈(脫)냉전 시대로 들어가는 문턱이 됐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북한이 쏴대는 미사일을 ‘작은 것’이라며 별것 아닌 듯이 취급했다. 690km까지 날아간 이스칸데르급 미사일도 있으니 다 ‘작은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 우리로서는 500km 미만 날아간 것도 제주도를 뺀 남한 전역에 위협이 되므로 미국 중심의 기준을 적용해 안보를 다룰 수는 없다. 그러나 미국에는 직접 위협이 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미국 우선주의자인 트럼프에겐 별것 아닐 수 있다.

▷미국은 지난해 10월 이미 INF 조약 탈퇴를 예고했다. 그 전해 러시아가 9M729라는 미사일을 배치함으로 사실상 INF 조약을 위배했다는 것이 이유다. 러시아는 그 미사일은 사거리가 490km로 INF 조약 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주장했으나 미국은 최대 1500km까지 날아가는 이스칸데르K 미사일로 보고 있다. 게다가 INF 조약은 미국과 러시아 사이의 조약으로, 새로 군사강국으로 굴기하는 중국이 그 조약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는 결정적 맹점이 있다.

▷냉전 해체의 상징이던 INF의 파기는 신(新)냉전의 시작 같은 분위기를 풍기고 있다. 마크 에스퍼 미국 국방장관은 INF 조약 탈퇴 하루 만인 3일 “아시아 지역에 중거리미사일을 배치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자 중국은 관영매체를 통해 “한국과 일본은 미국 아시아 정책의 총알받이가 돼선 안 된다”고 발끈했다. 냉전시대 소련은 SS-20, 미국은 퍼싱-2 배치를 놓고 유럽에서 맞붙었다. 이제 중거리미사일 배치의 전장(戰場)이 아시아로 확대될 모양이다. 동북아에는 냉전시대보다 더한 폭풍주의보가 내려진 셈이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