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애진 기자
추경안의 극적인 통과 소식에 시원하기보다 허탈했다. 올해 추경은 국회 제출부터 통과까지 역대 두 번째로 긴 시간이 소요됐다. 2000년 107일 다음으로 길었다. 그 지난한 과정에서 추경의 주요 목적은 미세먼지 대응으로 출발해 경기 대응이 추가되고 다시 일본 수출 규제 대응까지 결합됐다. 최근 10년간 편성된 여섯 차례 추경 중 지난해(3조8000억 원) 다음으로 규모가 작지만 명분은 역대 최대 규모나 다름없다. 국가재난급 환경오염에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최악의 경기 악화, 1965년 수교 후 최악의 한일 관계에 대응하기 위해 추경이 필요하다는데 금액은 올해 예산의 1.2%에 불과하다.
사실 이번 추경은 처음부터 논란거리였다. 국민 안전과 민생 경제를 내세웠지만 경기 대응 예산은 기존 일자리사업이나 실업급여 확대 정도에 그쳤다. 여기에 불법 폐기물 처리, 제로페이 확대 등 취지에 벗어나는 예산까지 포함됐다.
이처럼 효과가 불분명한데 집행까지 지연돼 그마저 반감될 지경이다. 북한 목선 국정조사나 국방부 장관 해임안 등 다른 정치 이슈와 연계하며 발목을 잡은 야당의 무책임도 적지 않다. 정부는 두 달 내 추경의 75%를 신속하게 집행하겠다지만 이미 타이밍을 놓쳤다는 지적이 나온다. 추경을 기다리느라 내년 본예산 편성까지 지연되는 등 국력만 낭비했다.
글로벌 무역전쟁에 일본발 수출 리스크까지 덮쳤는데 6조 원도 안 되는 추경 하나 붙잡고 석 달 넘게 씨름하는 게 우리의 현실이다. 정부 여당은 추경 중독 환자처럼 매년 본예산이 통과되면 바로 추경 명분을 찾는 습성을 버려야 한다. 그런 에너지가 있다면 본예산 편성과 기간 내 통과에 모두 쏟아붓는 게 맞다. 야당도 지금 같은 경제 위기 앞에선 국익과 정치적 이해를 나눌 수 있는 사리분별이 필요하다.
주애진 기자 ja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