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성윤 잡지 에디터
아니, 단순히 재미있다고 표현하자니 좀 아쉽다. ‘해학과 페이소스가 절절히 묻어난다’는 정도의 평은 어떨까. 세상사 모든 고민의 해답이 돈으로 여겨지고, 너무 얽매이지 말자 끊임없이 다짐해도 삶의 균형은 자꾸만 삐걱대고. 동시대 젊은이 대다수가 비슷한 속사정을 안고 있을 거라 말해도 그리 큰 비약은 아닐 성싶으니까 말이다.
힙합 경연 프로그램 ‘쇼미더머니’가 방영되는 시즌마다 곳곳에서 이런 유의 질문이 허공에 던져지곤 한다. “그런데 걔네는 왜 자꾸 돈 얘기를 하는 거야?” 십중팔구는 의문형의 형태를 빌린 쓴소리겠으나 더러는 진실로 연원을 궁금해하는 질문이다.
여전히 의문이 남을 수 있겠다. 질문에서 지칭한 ‘걔네’가 누구였느냐에 따라서. 흑인이 아닌 래퍼, 혹은 가난을 경험하지 못했을 래퍼도 가사에 돈 이야기를 쓰니까 말이다. 맥락을 떠나 이미 문화 고유의 문법이 됐다고 보는 게 타당할 터. 우연한 기회로 직접 질문했을 때 김봉현 씨는 되레 반문했다. “그런데, 돈 얘기 하면 안 되나요?” 돈이라는 주제를 굳이 정당화, 합리화하려는 강박이 오히려 보수적으로 보인다는 뜻이다. “대중가요가 맨날 사랑 얘기만 한다고 문제 삼지는 않잖아요. 돈은 사랑만큼이나 우리 삶에 밀접한 존재고, 굉장히 자연스러운 주제라고 생각해요.”
일리 있는 얘기다. 어쩌면 우리가 돈에 이토록 양가적 가치관을 갖게 된 데에도 돈 이야기를 쉬쉬하는 풍조가 한몫했을 테니까. 거리에서 생겨나는 문화에는 그만의 이유가 있고, 속된 주제에도 그 나름의 미덕이 있다. 주제가 돈이라는 이유로 간편히 혀를 차고 싶어진다면 그 정체가 지나친 엄숙주의가 아닌지 자문할 필요가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나는 힙합 문화의 주제의식에 더 많은 비평과 자성이 필요하다고도 생각한다. 돈은 사랑만큼이나 우리 삶에 밀접한 존재이나 그에 비할 바 없이 위태로운 주제이기 때문이다. 한탕주의 성격으로 어린 팬들에게 현혹적 메시지를 던질 때, 또는 가난과 게으름을 연결 지어 자신이 취득한 부로써 가난을 혐오하는 모양을 취할 때, 표현의 자유나 문학적 성취는 그저 허울이 된다. 더 이상 새롭지도 않고 말이다. 돈 자랑으로 점철된 몇 노래는 너무 구태의연해서 나는 차라리 1년 반 전에 나온 노래를 다시 흥얼거리게 되곤 한다. 이제 돈 얘긴 그만. 이제 돈 얘긴 그만. 그런데 정말로, 어떤 종류의 돈 얘기는 이제 그만해도 될 것 같다.
오성윤 잡지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