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도미니크 에어케(레돔) 씨(왼쪽)와 신이현 작가
농업학교를 다니면서 그는 포도나무에 적합한 땅을 발견했다. 파리에서 바다로 흘러가는 센강이 보이는 야트막한 언덕이었다. 강물에 반사된 햇빛이 종일 언덕을 되비추는 숲이었다. 땅주인은 절대 팔지 않겠다고 했고 결국 그는 빌려서 그곳을 개간했다. 포도나무를 심을 때는 노르망디 곳곳에서 사람들이 왔다. 레돔도 보름 동안 그의 집에서 숙식하면서 일했다. 지역민 모두가 관심을 가지고 함께 심은 포도나무 밭이었다.
“노르망디에 포도밭이라니, 이런 시도는 너무 멋져요. 우리 지역 조상님들이 만들었던 그 와인 맛이 정말 궁금해요. 보세요, 여기 포도나무 한 그루에 우리 가족 이름표를 달았어요. 역사적인 순간이에요!”
프랑스의 작은 와이너리들은 병입이라든가 찌꺼기 뽑아내기, 코르크 막기 등 사소하지만 중요한 것들은 공동으로 쓰는, 최적화된 기계들이 대신해준다. 시간과 경제적 부담을 덜 수 있는 시스템이다. 그런데 이 기계들이 노르망디까지 오지는 않는다. 와인 생산 지역에서만 가능한 일이다. 결국 에두아르는 자신의 작업장과 기계를 다 갖춰야 한다.
“올해는 포도가 햇빛에 심하게 화상을 입었어. 그렇지만 썩 나쁘지는 않아. 지금까지 발전이 전혀 없었다고는 할 수 없어. 문제는 와인을 만들 작업장이 아직 없다는 거야. 최소한의 장비는 갖추어야 하는데 말이야.”
에두아르의 농법은 숲의 생태계를 가능한 한 그대로 유지하는 포도밭을 일구는 것이다. 잡초를 베는 정도의 최소한으로 나무를 돌본다. 생태학자들이 와서 그의 포도밭에 몇 종류의 자연 벌레들이 그대로 살고 있는지 조사할 예정이었다. 숲에 사는 벌레종들이 그대로 살아간다면 그곳은 숲이라는 생태계에 자리한 야생 포도밭이 될 것이다. 수확을 보려면 시간이 걸릴 것 같았다. 그 또한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사업 초반의 ‘죽음의 계곡’을 지나는 중인 듯했다.
“걱정은 접어두고 네가 만든 시드르를 한번 마셔 볼까.”
“나에겐 좀 더 시간이 필요한 것 같아. 그렇지만 내년엔 내 와인도 함께 마실 수 있을 거야. 우리 바다로 수영이나 하러 갈까? 노르망디 물이 정말 좋아. 풍경도 끝내 줘.”
아직 넘어야 할 산과 갈 길이 먼 두 농부는 바다에 도착하자 해맑은 얼굴이 되었다. 한마디 말도 필요 없이 훌훌 벗어던지더니 넘실대는 파도를 향해 달려갔다.
신이현 작가
※ 프랑스인 남편 도미니크 에어케(레돔) 씨와 충북 충주에서 사과와 포도 농사를 짓고 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