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운전 1000명을 살린다]<13> 예산부족 이유로 위험 방치
서울 동작구 노들로의 양화대교 방향 한강철교 아래 구간의 차선이 지워져 있다. 서울시가 관리하는 노들로의 이 구간은 2차로이지만 2016년 하반기 이후 차선이 지워져 있어 운전자들이 차로 수를 3개로 헷갈려 하는 일이 잦다. 이사진은 6월 4일 촬영했지만 서울시는 8월 5일 현재까지 도색작업을 하지 않았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기자는 지난달 18일 오전 봉담과천도로의 학의 갈림목에서 과천 나들목까지 3.9km 구간에서 직접 차를 몰았다. 파이고 갈라진 노면을 땜질해 놓은 곳이 4차로의 주행 구간 곳곳에서 나타났다. 이런 곳을 지날 때마다 차는 덜컹거렸다. 도색을 한 지가 오래돼서인지 차선의 색이 희미해 잘 보이지 않는 곳도 많았다. 유료 도로라고는 하지만 국가가 관리하는 고속도로에 비해 노면 상태가 열악해 보였다. 경기남부도로 관계자는 “관리권을 넘겨받은 뒤 경기도의 지원 없이 도로를 운영 중인데 통행량 증가와 도로 노후화로 유지 관리 수요가 매년 늘면서 예산이 빠듯하다”며 “과천 구간은 올해 안에 보수할 계획이다”라고 말했다.
국토의 실핏줄이라 할 수 있는 지방도로의 안전 관리가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중앙정부 예산을 안정적으로 지원받는 국가도로(고속도로와 국도)와 달리 지방자치단체 예산에만 의존하는 ‘지방도로(국가도로 외 모든 도로)’는 차선 도색조차 제때 하지 못해 사고 위험을 키우는 곳이 많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2018년 기준 국내 도로의 총길이는 10만2465km다. 이 중 국가도로는 1만8618km, 지방도로는 8만3847km다. 지방도로가 차지하는 비율이 80%를 넘는다. km당 사고 발생 건수를 보면 지방도로는 2.3건으로 국가도로(1.2건)의 약 2배다. 국가도로에 비해 지방도로에서 사고 발생이 잦은 건 도로 보수나 개선 등 교통안전을 위해 투입할 수 있는 예산이 국가도로에 비해 부족하기 때문이다.
국가도로는 매년 ‘교통시설특별회계’를 통해 관련 예산이 안정적으로 투입된다. 국가도로 투입 예산은 지난해 5조4240억 원, 올해 5조4549억 원에 달했다. 하지만 지방도로는 지방자치단체의 재정 상태에 따라 예산 규모에 차이가 많이 난다. 또 도로 안전을 위해 투입된 예산의 세부 내역을 보면 지능형교통체계(ITS), 버스정보시스템(BIT)처럼 도로 상태 보수나 개선과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경우도 적지 않다.
교통안전에 대한 국민의 기대 수준이 높아지면서 관련 정책과 시설 기준은 선진국 수준에 가까워지고 있다. 도로 노면 표시가 대표적이다. 경찰청은 도로교통법 시행령을 개정해 올해 6월 노면 표시의 반사 성능 기준을 높였다. 하지만 지자체들은 예산 부족으로 성능 기준을 높인 차선 도색에 당장 나설 수 있는 형편이 못 된다. 도로교통공단은 2016년 도로 길이 기준으로 지방도로에 흰색 차선을 칠하는 데만 2288억 원이 필요한 것으로 추산했다. 국가도로와 지방도로의 전체 차선 유지 관리 예산이 연간 1800억 원 정도다.
전문가들은 2022년까지 전체 교통사고 사망자 수를 2000명대로 낮추는 국정 과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지방도로에서 발생하는 사고를 줄이는 게 급선무라고 입을 모은다. 박진경 한국지방행정연구원 연구위원은 지난달 24일 국회에서 열린 ‘지속가능한 교통안전예산 법제화를 위한 정책 토론회’에서 “현재 국가의 지방도로 지원은 도로를 새로 건설할 때만 이뤄져 건설 후 유지 보수는 지방자치단체의 부담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윤호 안전생활실천시민연합 안전정책본부장은 “교통사고 피해를 줄이는 게 사회 전체의 편익 향상으로 이어진다는 관점으로 지자체 교통안전을 위한 안정적인 예산 확보가 필수적이다”라고 강조했다.
프랑스와 이탈리아는 각각 예산법과 도로법을 통해 교통법규 위반 차량 운전자가 내는 범칙금을 지방정부가 교통안전을 위한 시설 투자에 쓸 수 있도록 했다. 일본은 교통법규 위반 차량에 부과하는 과태료와 범칙금으로 조성한 교통안전대책 특별교부금을 총무성이 매년 각 지자체에 나눠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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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형석 기자 skytree08@donga.com